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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훈국제중 결국 입학비리…‘귀족학교’의 예고된 탈선

[한겨레] 등록 : 2013.03.05 19:48 수정 : 2013.03.06 09:57

뉴스분석 ‘뒷돈 입학’ 의혹 특별감사
부유층 배려한 ‘사배자 전형’ 이어
학부모 “입학대가로 2천만원” 폭로
비싼 수업료·영어몰입교육 등
설립 전부터 사회적 논란 불러

서울 영훈국제중학교가 학부모에게 2000만원가량의 돈을 받고 학생을 입학시켜줬다는 의혹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이 특별감사를 벌이기로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아들의 사회적 배려 대상자(사배자) 전형 합격으로 촉발된 영훈중의 입시 관련 논란이 ‘뒷돈 입학’ 의혹으로 확산되고 있다. 초등학생까지 입시 경쟁에 내모는 국제중의 폐단에 대한 논란도 다시 불거질 전망이다.

김관복 서울시교육청 부교육감은 5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영훈중이 학생을 입학시켜주는 대가로 학부모로부터 2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져 나온 만큼, 곧 특별감사를 나갈 계획이다. 금품수수 의혹부터 회계 문제까지 학교 운영 전반을 감사한 뒤 검찰 수사가 필요한 부분이 드러나면 고발이나 수사의뢰를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애초 사배자 전형 운영의 적절성에 대해서만 벌이기로 했던 특별감사 범위를 ‘입시 비리’로까지 확대한 것이다. 앞서 한 영훈중 졸업생의 학부모는 지난 4일 “아이가 입학 대기자 상태일 때, 학교 고위 관계자로부터 ‘입학을 시켜줄 테니 2000만원가량을 내라’는 제안을 받고 돈을 줘 아이를 입학시켰다”고 일부 언론에 폭로했다. 영훈중이 어떤 학교이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영훈중은 대원국제중과 함께 서울에 단 2곳뿐인 국제중이다. 경쟁과 엘리트 교육을 강조한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 시절인 2009년 특성화중학교의 한 유형으로 설립됐다. ‘국제화 시대에 대비할 인재를 조기에 육성한다’는 게 설립 취지였다. 그러나 국제중은 설립 전부터 비싼 수업료와 영어몰입교육으로 숱한 논란을 불러왔다. 중학교는 무상으로 이뤄지는 보편적인 의무교육 단계인데, 부유층만 다닐 수 있고 영어로 수업을 하는 ‘귀족학교’가 공교육 체계에 들어서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논란이었다. 영훈중의 연간 등록금은 720만원에 이른다. 급식비와 특기적성비 등 수익자 부담 경비는 별도다. 또 영훈중에선 원어민 교사가 3년 동안 2000시간을 영어로 수업하는 영어몰입교육을 한다. 외국의 원서 교재로 영어·수학·사회·과학 등을 가르치고, 국어와 한국사 등 일부 과목만 한국어로 수업을 한다.

공 전 교육감이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에도 국제중 설립을 추진했으나, 교육부의 완강한 반대로 뜻을 접은 것도 이런 논란 때문이었다. 이에 공 전 교육감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국제중 설립을 재추진했으며, 당시에도 서울시 교육위원회가 ‘설립 동의안’ 처리를 한 차례 보류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학비가 대학 등록금 수준으로 비싸지만 국제중의 인기는 매우 높다. 영어몰입교육과 높은 ‘명문고’ 진학률에 매력을 느끼는 학부모들이 선호하기 때문이다. 영훈중의 2013년 신입생 모집에는 160명 정원에 1348명이 지원해 8.43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일반전형의 경우, 1단계에서 초등학교 5~6학년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성적과 출결 상황 등 학교생활기록부(55점)와 추천서(30점), 자기개발계획서(15점)를 평가해 정원의 3배수를 뽑은 뒤 추첨으로 최종 합격자를 선발한다. 졸업생들은 대부분 특수목적고와 자율형사립고 등 성적 우수자를 선발하는 ‘명문고’로 진학한다. 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이 최근 공개한 ‘영훈국제중 졸업생의 고교 진학 현황’ 자료를 보면, 올해 영훈중을 졸업한 2기 졸업생 162명 가운데 75%가 외국어고 등에 진학했다.

부유층이 대부분인 학생 구성을 다양화하기 위해 사배자 전형이 도입됐지만, 이마저도 편법 운영돼온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사배자 전형에서 한부모가정 자녀 등 비경제적 배려 대상자로 합격한 학생의 절반 이상이 부유층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는가 하면, 사배자 학생이 전학을 가 생긴 빈자리를 일반 학생으로 채우기도 했다. 이재용 부회장 아들도 한부모가정 자녀 자격으로 사배자 전형에 지원했다. 사배자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 중에는 위화감을 느끼거나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해 중도탈락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영훈중에선 학교가 문을 연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7명이 중도탈락했고, 이 중 7명이 사배자였다. 영훈중에 자녀를 보냈던 한 학부모는 “학칙이 엄격해 면학 분위기를 해쳤다는 이유 등으로 학생들을 반강제로 퇴학시킨다. 결원을 채우기 위해 전입생을 받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적지 않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영훈중 입시와 운영 과정의 치부가 잇따라 드러나면서 국제중의 존립 이유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조상식 동국대 교수(교육학)는 “세계화 시대에 필요한 전문적인 능력은 대학 진학 뒤에 길러도 늦지 않은 만큼, 국제중이라는 형태의 학교가 굳이 있을 필요는 없다. 초등학생까지 입시 교육에 내몰고 교육 불평등을 부추기는 등 부작용이 큰 국제중은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