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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 가야죠… 강남서 재수는 필수"

[한국일보] 권영은기자 you@hk.co.kr 입력시간 : 2013.03.18 21:09:24 수정시간 : 2013.03.19 08:48:44

 

올해 2월 서울의 한 외고를 졸업한 이모(19)양은 현재 집 근처 강남구의 한 재수학원에 다니는 '고등학교 4학년'이다. 이양은 "워낙 주변에서 재수를 많이 하다보니 고등학교 3년, 강남 재수학원 1년, 총 4년간 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 간다는 얘기가 낯설지 않다"고 말했다. 이양은 "SKY(서울ㆍ고려ㆍ연세대) 정도는 가야 한다"는 학교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재수를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서초구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강남 재수학원을 다니는 권모(19)양은 "고3 때 우리 반 친구들의 80%가 재수를 하는데 점수 맞춰가면 어느 대학이든 갈 수는 있는 애들이 대부분이지만 더 좋은 대학을 가려고 재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좋은 대학을 가고 싶어 재수를 선택하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서울 강남 지역의 재수 열풍은 광풍에 가깝다. 최근 한 입시업체의 분석에 따르면 2010~2012학년도 강남구와 서초구의 고3 재학생 대비 재수생 비율이 각 76%, 68.4%로 구로구(26.6%)보다 월등히 높다. 강남지역에선 고교 졸업 후 '4학년'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재수할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 지역인데다, 복잡한 입시제도가 2번째 기회를 갖도록 부추긴다는 분석이다.

부유층과 좋은 고등학교가 몰려 있는 강남 지역은 실제로 명문대 진학률이 높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수험생과 교사들 사이에선 일단 상향 지원하고 보는 경향이 퍼져 있다. 서울고(서초구)의 한 교사는 "학생들이 자신의 조건보다 높은 대학을 목표로 잡다 보니 많이 떨어지고, 경제적으로 유복해 쉽게 '재수하면 되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준에 맞춰 진학하는 학생들이 거꾸로 박탈감에 빠질 정도다. 세화고(서초구)의 한 교사는 "주변에 좋은 대학 가는 친구들이 많으니까 실패한 게 아닌데도 '나는 실패했구나'라는 자괴감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학벌 좋고 경제력 있는 학부모들도 적극적으로 재수를 권장한다. 강북권 학교에서 6년여간 고3 지도를 맡았던 경기고(강남구)의 한 교사는 "강남 학부모들은 다른 지역보다 유독 기대치가 높다"며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력도 있으니 아이의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재수비용을 부담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경제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요즘 웬만한 재수학원 1년 다니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사립대 한 해 등록금을 웃돈다.

입시제도가 재수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재수 끝에 올해 연세대에 입학한 민모(20)양은 "내신이 특별히 좋지도 않았고 비교과 영역을 준비해둔 것도 없었는데, 비중이 높은 수시모집을 무시할 수 없어 고3 내내 내신에 매달리다 떨어졌다"며 "재수생은 1년 내내 수능에만 집중할 수 있고 전문 학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고3보다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권 전국진학지도협의회 회장(대진고 교사)은 "요즘 대세는 논술과 입학사정관제인데 1학년 때부터 이런 전형에 맞춤형 준비를 못한 학생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지원 기회를 놓치고 결국 재수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임은희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재수를 할 수는 있지만 요즘은 똑같은 과라도 조금이라도 순위가 높은 대학을 가기 위해 재수를 하는 등 너무 만연돼 사회적 낭비가 크다"며 "특히 강남 지역의 경우 어려서부터 특목고-자사고-일반고 등으로 계층화되고 있는데 대입마저 가정의 물적 지원을 바탕으로 다른 지역보다 재수를 더 많이하면서 생기는 교육 양극화 문제도 심각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