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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속'을 채우자] <2부> 상생의 길 ① 교육도 있는 사람이 더…

[세계일보] 입력 2013.04.09 19:47:38, 수정 2013.04.10 13:09:47

과거 한국 사회는 집이 가난하고 부모가 변변치 못한 자식도 공부만 잘 하면 성공할 수 있었다. 본인 의지와 노력에 따라 주요대 입학이나 고시 합격 등 출세 코스를 밟아 부와 명성을 쌓는 게 가능했다. 계층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한 교육의 힘으로 개천에서 용이 많이 났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용을 찾아보기 어렵게 된 지 오래다. 교육이 오히려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부와 빈곤의 대물림을 고착화하는 통로로 전락하면서다.
전문가들은 공교육의 제 기능 상실과 사교육 경쟁 속에서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교육 기회 자체가
달라지는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이러한 교육 격차를 방치하면 사회 통합 방해 등
엄청난 국가적 손실을 초래하는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소득 양극화가 낳은 교육 불평등

소득 양극화가 교육 격차를 벌리고 있는 징후는 곳곳에서 확인된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4분기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가계수지만 봐도 그렇다. 소득 상위 20% 계층이 지출한 교육비는 평균 40만7000원으로, 소득 하위 20%의 평균 교육비(5만7000원)의 7배에 달했다. 해당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최대 격차다.

지난해 6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전국 5069가구의 통계자료를 기초로 ‘영어 격차’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부모의 월 소득이 100만원 많으면 자녀의 토익점수가 21점 높았다. 영어 사교육과 해외 연수 등에 투자할 여력이 소득이 높을수록 많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문제는 이런 교육비 격차가 학생들의 학력차를 낳고 향후 취업에까지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교육업체 이투스청솔에 따르면 입학과 재학을 위한 교육비 부담이 만만찮은 외국어고국제고 등 특목고 진학생(지난해 기준) 중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양천·노원구의 ‘교육특구’ 출신이 45%에 육박했다. 서울대 합격자는 7년 전 전체의 77%에 달했던 일반계고 출신이 2013학년도에 63.1%로 준 반면, 특목고 출신은 6.7%에서 11.9%로, 과학고 출신은 8.1%에서 11.6%로 늘었다. 특히 고교 유형과 상관없이 지난해 서울대 신입생의 47.1%가 ‘월소득 500만원 이상’ 가구의 자녀였고, ‘월소득 1000만원 이상’ 가구의 자녀도 9.3%나 됐다.

전통적으로 출세코스의 꼭짓점으로 꼽히는 법조계도 이미 외국어고 출신이 장악하고 있다. 법률신문의 ‘2013년판 한국법조인대관’에 따르면 경기고와 대원외고 출신 법조인이 각각 460명으로 공동 선두였다. 1984년 개교한 대원외고가 100여년 역사의 경기고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하지만 현직 판사만 따지면 대원(85명)·한영(43명)·명덕(39명)외고 출신이 1∼3위를 휩쓸었고, 경기고 출신은 33명으로 4위에 그쳤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교육학)는 “사교육의 위력으로 자본의 힘에 의해 자녀의 학업성취도가 결정되면서 저학년 때부터 교육 격차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희망격차’ 커진 절망의 대한민국

교육이 계층 이동 사다리보다 계층 고착화 구실을 하면서 ‘희망격차’도 확대되고 있다. 자신은 물론 자식도 계층 상승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통계청이 격년으로 발표하는 ‘2011년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일생 동안 노력한다면 본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가능성이 높다”고 한 응답자는 28.8%에 그쳤다. 2년 전 같은 조사 때의 35.7%보다 훨씬 준 것이다. 반대로 “상승 가능성이 낮다”는 비관적 응답자는 48.1%에서 58.8%로 크게 늘었다. 자식들의 계층 상승 가능성에 대해서도 긍정적 응답자 비율은 48.4%에서 41.7%로 하락했고, 부정적 응답자는 30.8%에서 43.0%로 급증했다.

특히 우리 사회의 중추인 30∼40대가 본인과 자식의 신분상승 가능성에 가장 부정적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30대는 본인의 계층 상승가능성에 65.1%(자식 47.8%)가, 40대는 64.1%(자식 46.9%)가 ‘낮다’고 응답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이 자료와 가계동향을 분석한 결과에서는 월 소득 100만∼200만원 가구 중 사회·경제적 지위 상승 가능성이 높다고 응답한 비율이 23.5%로, 월 소득 600만원 이상 가구(50.7%)의 절반도 안 됐다. 가난이 희망까지 갉아먹고 있는 셈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모의 재력에 따라 자식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가 결정되면서 계층 상승의 기회도 차단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30∼40대는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이런 현실의 벽을 뼈저리게 느껴 절망감이 더 큰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학력경쟁 구조를 바꿔야 교육 격차 해소

역대 정부는 교육기회 형평성 확충을 위해 노력했지만 교육 격차를 막지 못했다. 박근혜정부도 교육 불평등 해소와 함께 꿈과 끼를 살리는 행복교육을 약속했다. 저소득층 학생에 대한 교육비 지원과 무료 방과 후 돌봄·활동 등 다양한 ‘교육복지’ 정책으로 교육 소외 현상을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교육복지도 중요하지만 입시·성적 위주의 학교 교육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저소득층 학생을 학력 경쟁에만 매달리게 지원하는 것은 승산 적은 싸움에 내모는 것과 다름없다는 점에서다.

김경근 고려대 교수(교육학)는 “계층 간 교육격차 해소방안이 현실성을 담보하려면 저소득층 출신 중 학력이 뛰어나거나 학업열정이 있는 학생은 학력 향상을 돕도록, 다른 분야에 끼와 재능이 있는 학생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소질을 사장시키지 않도록 구분해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과 성적도 신통치 않고 학업에 흥미가 없는 저소득층 학생은 학력 향상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각자의 잠재력과 재능을 발굴해 진로를 개척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강은·윤지로 기자 ke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