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애(無碍)와 화쟁(和諍)을 설파한 원효


바로코리아(오정삼)



 <목차>

 1. 서론

 2. 원효의 생애와 교육사상

 3. 마침글 : 우리 사회의 진정한 무애(無碍)와 화쟁(和諍) 바라며 




1. 서론

 

원효는 그 어떤 이보다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는 사람이다. 어린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원효의 유명한 여러 가지 일화들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기에 필자 또한 친숙하게 다가오는 인물이다.

그러나 단지 친숙함과 대중성에 이끌려서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각종 갈등과 대립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어떤 때보다 원효의 무애(無碍)와 화쟁(和諍)의 사상이야말로 우리가 배우고 실천해야할 중요한 정신이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 다른 어떤 사회보다도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의 젊은이들, 그리고 계층간 빈부격차의 간극이 더욱더 넓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 속에서 ‘모든 것에 거리낌이 없이, 모두 하나로 통합’하고자 하는 원효의 사상이야말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원효의 무애(無碍)와 화쟁(和諍)의 사상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갈등의 치유의 길이 찾아지기를 기대하며 원효의 생애와 교육 사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2. 원효의 생애와 교육사상

 

2.1. 원효의 생애

 

원효(元曉)는 서기 617년(신라 진평왕 39년)에 경상북도 압량(押梁 : 지금의 경산시)에서 잉피공(仍皮公)의 손자이며, 내마(奈麻) 담날(談捺)의 아들로 태어났고, 성은 설(薛)씨, 아명은 서당(誓幢), 원효는 법명이다. 원효의 집은 원래 율곡의 서남지역에 있었는데 원효의 어머니가 골짜기를 지나다가 돌연 산기를 느끼고 밤나무 밑에서 출산을 했다고도 하여 이 나무를 사라수(娑羅樹)라고 했다고 한다.

원효는 일찍이 15세에 출가를 하여 수도하였으며 스승 밑에서 경전을 공부한 것이 아니라 전적(典籍)을 통해서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또한 원효는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홀로 경전을 연구하여 정진하다가 의상(義湘)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들었다가 여행 도중에 무덤가의 해골에 고여 있는 물을 마신 후 “모든 진리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찾아야 한다(一切唯心造)”는 깨달음을 얻고 의상과 헤어져 돌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원효는 40대 초반에 태종무열왕의 둘째딸 요석공주(瑤石)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나았고 이로 인하여 계(戒)를 파하고 자신을 소성거사(小性居士)라 칭하며 속인행세를 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광대의 춤추는 모습을 보고 광대의 모습으로 노래를 지어 불교의 교리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하였으니 그 노랫가락이 “모든 것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라야 생사의 편안함을 얻나니라”라는 내용의 무애가(無碍歌)이다. 또한 그는 거사들과 어울려 술집을 드나들며 기생들과 어울리기도 하였고, 때로는 사당에 가서 가야금을 켜며 음악을 즐기기도 하였으며, 여염집에서 숙박을 하며 틀에 박힌 생활을 멀리하고 규범에 치우치지 않는 각종 기행을 일삼기도 하였다.

이후 원효는 ‘금강삼매경’의 주석서 3권을 지어 왕과 여러 대신들, 그리고 전국의 고승들에게 강해를 시작했는데 그의 강설이 심히 도도하고 질서정연하여 이를 듣는 이들의 입에서 절로 찬양의 소리가 나오며,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고승들이 스스로 자신을 뉘우쳤다고 한다. 이 후 원효는 조용한 암자를 찾아 수행과 저술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한편 현재 전하고 있는 원효의 저술은 20부 22권에 달하는 데 특히 ‘대승기신론소’는 중국의 고승들도 해동소(海東疏)라 하며 즐겨 보았고 ‘금강삼매경론’은 여전히 대저술로 칭송받고 있는 문헌이다.

이와 같은 원효의 생애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그는 학승(學僧)으로서 뿐만 아니라 민중을 교화하는 대중불교의 스승으로서 신라사회에서 왕실과 경전 중심으로 귀족화한 불교를 민중불교로 바꾸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당시 불교의 종파주의적인 불교이론들을 타파하고 함께 어울리는 화쟁(和諍)의 사상을 몸소 몸으로 실천한 사상가이다.

 

2.2. 원효의 교육사상

 

2.2.1. 일심사상(一心思想)

원효의 일심사상은 그의 대표적인 저서 ‘금강삼매경’이나 ‘대승기신론소’ 등에서 일관되게 드러나고 있다. 즉 인간의 의식을 깊이 통찰해서 깨달음에 이르는 것은 마음을 원천에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여 모든 것이 궁극은 하나로 합쳐지고, 모든 행동은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상을 설파하며 대승과 불성을 통해서 육바라밀(六波羅蜜)의 실천을 강조하였다.

 

2.2.2. 화쟁사상(和諍思想)

원효는 신라시대의 종파주의적 불교의 사상에 치우치지 않고 ‘화엄경’, ‘반야경’, ‘열반경’ 등 대승불교의 경전 전체를 섭렵하고 통찰한 인물이다. 따라서 원효는 모든 불교가 전체적으로 하나의 진리에 도달할 수 있고 자기 분열이 없는 보다 높은 입장을 보이는 불교의 사상체계를 수립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는데 이러한 모든 불교의 조화의 사상을 화쟁사상이라고 한다. 특히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은 원효의 화쟁사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핵심적인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쟁론은 집착에서 생긴다. 어떤 이견의 논쟁이 생겼을 때, 가장 유견(有見) 공견(空見)과 다르고 공집(空執)은 유집(有執)과 다르다고 주장할 때 논쟁은 더욱 짙어진다. 그렇다고 하여 이들을 같다고만 하면 자기 속에서 서로 쟁(爭)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異)도 아니요 동(同)도 아니라고 설한다.”고 하여 불교의 모든 사상과 교리가 모두 하나임을 강조하며 종파를 떠나 모두 하나로 통합가능 함을 설파하였다.

 

2.2.3. 무애사상(無碍思想)

원효의 무애사상은 그의 기이한 행적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듯이 그는 늘 어떤 처소, 어떤 모습으로도 거리낌이 없는 자유인으로서 행동하였다. 그는 “일체의 걸림이 없는 사람은 단번에 생사를 벗어난다.”라고 하면서 자신이 취하고 있는 거리낌 없는 행동이 진리와 궁극의 길임을 설파하였다. 또한 그는 부처와 중생을 가르지 않고 하나로 보면서 “무릇 중생의 마음은 원융하여 걸림이 없는 것이니, 태연하기가 허공과 같고 잠잠하기가 오히려 바다와 같으므로 평등하여 서로 차별이 없다.”고 하여 중생을 곧 부처로 보았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자유로운 행동이 부처의 중생심이 내재한 행동이라고 보았고 이를 근거로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언제나 거리낌 없이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더 나아가서 그가 당시 불교의 어떤 종파와도 함께 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고 궁극적으로 신라사회의 귀족불교가 대중불교로 전환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마침글 : 우리 사회의 진정한 무애(無碍)와 화쟁(和諍) 바라며

 

현재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지배적 논리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하에서 유독하게도 강조되고 있는 경쟁과 선별이다. 즉 신자유주의 경제가 지배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위험요소는 전통적 사회적 위험과 달리 부의 분배에 있어서 양극화와 계층적 구조의 고착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각종 매스컴으로부터 ‘OECD 노인자살률 1위, 청소년 자살률 1위’ 등의 비극적인 보도들을 거의 매일 접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극강의 경쟁 속에서 ‘서로 다름’을 하나의 중요한 경쟁의 기회요인으로 생각하는 사회에서 서로 화합하고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은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이러한 ‘다름’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사회구성원은 서로를 배척하고 시기하고 질투한다.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다른 아파트 단지의 아이들이 학교 가는 거리를 줄이고자 단지를 지나가는 것이 보기 싫다고 철조망을 치고, 심지어 같은 단지 내에서도 거주 평수에 따라서 사귐이 나누어지는 사회, 이러한 차별과 이기심이 가득한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배려과 나눔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한편으로는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일자리가 보장되지 못하는 사회에서 일부 젊은이들은 노인 일자리 정책이 자신들의 파이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부모들은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 앞에서 자신의 과거 경험에 비추어 자신의 자녀들이 극단의 입시경쟁을 통한 학력과 학벌의 사회에서 승리할 것을 강요한다. 결과적으로 부익부 빈익빈의 지역적 불평등 구조가 날로 강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현실은 자신을 더욱 남과 구별하게 만든다.

이러한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원효의 무애와 화쟁의 사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역, 인종, 학력, 젠더의 차이에 매몰되지 않고 서로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성경의 한 구절에 나오는 말처럼 ‘사자들이 어린 양과 뛰노는’ 사회를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다름’을 기회의 요인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같음’을 발전의 요인으로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인가?

필자가 좋아하는 말 가운데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이 있다. 원효의 무애와 화쟁의 사상이 우리 사회에서 시사하는 진정한 의미는 ‘서로 함께 하나 같지는 않은’ 것일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소위 ‘다문화 사회’가 되어가고 있고 신자본주의 질서의 세계화 과정에서 우리만 이 이 땅의 유일무이한 존재일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피부와 인종이 다르다고 해서, 혹은 지역이 다르다고 해서 편가르기를 계속하고 있다. 이제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인식적 변환을 토대로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프레임들이 바뀌어야 한다. 함께하는 사회, 배려하는 사회, 나눔의 사회만이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 적어도 이 땅에서 태어나고 이 땅에서 자라난 우리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와 조건의 평등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날로 심화되어가는 모순과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

지금 필자가 이 글을 쓰면서 필자의 머리 속을 스쳐가는 것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는 남과 북의 대립과 갈등이다. 멀지 않는 미래에 통일을 준비해야할 통일의 주역으로서 평화적인 통일과 이의 이행을 가능케 하는 것 또한 원효의 무애와 화쟁의 정신 아니겠는가?

진정 우리가 이러한 원효의 정신을 배워 실천할 수 있다면 언젠가 우리는 우리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해소하고 ‘이름 없는 꽃들 다 이름을 얻고, 움추린 어깨들 다함께 펴고, 얼싸안고 춤출 수 있는’ 진정한 원효의 무애가(無碍歌)를 부르며 덩실덩실 춤추는 날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1] 김지견 편,『원효성사의 철학세계2』, 한국전통불교연구원, 1989

[2] 김상현,『역사로 읽는 원효』, 고려원, 1994

[3] 김형효 외,『원효의 사상과 그 현대적 의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

[5] “원효대사”,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불교설화), 네이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766054&cid=49242&categoryId=49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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