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리베카 솔닛,『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창비, 2015


바로코리아(오정삼)



 <목차>

 1. ‘여성’이라는 주제(subject)의 종속과 예속성

 2. 여성주의 인식론의 한계 극복을 기대하며

 3. 글을 마무리 하며 



1. ‘여성’이라는 주제(subject)의 종속과 예속성

 

오랜 역사 동안 유교적 문화의 영향 하에 있었던 한국 사회에서 남녀간의 성별분업에 관한 구조적 틀은 역사적으로 신분제적인 봉건적 질서를 합리화하고자 하는 기제로서 자리잡아왔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 하에서 우리 사회는 서구사회와 비교해 볼 때 남녀간의 성차에 있어서 공적인 부분과 사적인 부분 모두에서 성별 분업의 봉건적 관념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즉 모든 여성들은 이 사회의 잠재적 어머니로서, 그리고 아내로서 규정됨으로 해서 노동시장에 참여하면서도 항상 차별적 위치에 존재해왔다. 또한 이러한 사회적 암묵적 규정들이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서 여성들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정당화할 수 있는 기제로 작용해왔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사회적 관념 하에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성적 각본을 확인하면 확실히 이중적인 성규범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사회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유교문화의 영향 하에서 상당히 엄격한 성적 윤리가 사회를 지배해왔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남성과 여성의 성적 규범에 있어서 이중적 잣대를 들이대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여성들에게 있어서 요구되어지는 순결과 정절에 대한 강요는 남성들에게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다수의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이러한 이중적인 성윤리를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인다는 데 있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은 심지어 남녀간의 성관계에 있어서도 여성의 경우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이상적으로 여기게 되고 상대적으로 남성은 적극적인 성적 자기 결정권을 보여주는 것은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은 심지어 성적 욕망과 선택권이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남성들의 경우는 주체할 수 없는 강한 성적 욕망을 충동적으로 충족시켜야 하는 존재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 암약하고 있는 매춘산업에 대해서 불가피성을 강하게 주장하는 입장들이 존재하게 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당화 논리들이 횡행하고 있다.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가부장적인 남성중심의 사회 논리들을 극복하고 여성 스스로 성적 자기 결정권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통해서 여성도 또한 성적 욕망을 통해서 남성들이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성적 요구에 대해서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서만이 여성이 남성들의 성적인 통제에서 벗어나서 여성 스스로 양성 평등의 사회적 권리를 보장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글에서 저자가 얘기한 ‘여성은 주제(subject)'라는 얘기는 그 중의적(重意的) 상징성이 크다 할 것이다.

 

 

2. 여성주의 인식론의 한계 극복을 기대하며

 

2.1. 우리 사회의 여성주의 인식론의 한계

 

많은 여성주의 학자들은 우리 사회의 이전부터 내려온 지식체계가 의도적으로 여성의 자발적 경험이나 삶을 왜곡시키거나 배제시켜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의 출발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언어자체가 남성 중심성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남성들은 우리 사회에서 늘 권력의 중심부에 있었고 여성들은 그 언저리에서 남성을 보조하는 부차적 역할만을 수행해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환경 하에서 여성이 여성 스스로를 자각하고 자신의 역할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은 수동적 억압의 상태에 빠져들고 이것이 여성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기본적 기제로 작용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억압의 상황에서 남성들이 지배하고 결정해왔던 사회적 규범에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들은 불경스럽거나 일탈의 인간으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따라서 여성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사회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자원의 배분에 있어서 상당한 부분 소외되어 올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여성을 여성 그 자체로서 판단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적 영역과 역할에 있어서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2.2. 성별분업의 평등성을 위하여

 

우리 사회에서 최근에 흔히 많이 쓰이는 신조어 가운데 ‘경단녀’라는 용어가 있다. ‘경단녀’란 경력단절 여성에 대한 사회적 통용어로서 여성들이 취업을 하더라도 육아와 가정을 위하여 직장을 그만두는 10 여년의 기간 동안의 여성들의 생산성 저하를 지적하는 용어이다. 실제로 유교적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나라에서 여성들은 취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잠재적으로 어머니, 혹은 아내, 며느리로 인식되곤 한다. 따라서 주어진 업무환경 하에서 자신의 업무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고 인식되어지는 경향이 있기에 기업의 문화는 여전히 여성들에게 유리천정을 깰 수 없는 장벽으로 느끼게 한다. 이와 반면에 남성들의 경우 실업이 지속되는 과정에서도 잠재적 노동자로 인식되고 이들이 사회 발전의 가장 주요한 동력으로 취급받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성들은 상대적으로 여성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느끼게 되고 이러한 조직문화 속에서 여성은 더욱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따라서 가뜩이나 육아와 자녀교육에 대해서 그 어떤 사회보다도 강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직장에서의 후퇴는 대다수의 ‘경단녀’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하는 길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최근에 적지 않은 기업에서 남성들의 육아휴직을 보장하고 실제로 육아휴직을 선택한 남성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남성들의 자발적 육아휴직을 가로막는 것은 역시 향후 직장으로의 복귀 시 그동안의 업무 공백을 바라보는 조직 내에서의 시각적 한계가 여전하기 때문에 여전히 여성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결국 여성이 어떤 직업에 종사하던 여성에게 씌워지는 이중적 굴레는 과거 봉건사회의 단순한 유물로서가 아니라 산업화된 사회에서 보다 효율적이고 경쟁적인 인력배치를 필요로 하는 사회 환경과도 잘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이러한 성별분업의 불평등성은 생애주기 가운데 매우 높은 생산력을 보이는 30~40 대 여성들의 사회적 참여를 보장하고 불평등을 해결해나가야 과제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점점 확대되고 있는 경쟁의 심화 과정에서 단순한 시장논리와 능력중심 정책에 의해서 여성들에게 둘러쳐지고 있는 출산․양육과 시장 노동의 불공정한 대우를 극복할 필요성을 더욱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여성 노동에 대한 단순한 기회의 평등 뿐만 아니라 노동 시장 내에서의 성적 차별과 간접적인 차별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조건의 평등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2.3. 끊이지 않는 여성에 대한 성착취

 

인류는 아주 오랜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남성들에 의해서 성착취를 받아왔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현대 사회에서 조차도 많은 여성들에게 성폭력, 성희롱 등의 성적 착취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심지어 최근 미국 대선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선 후보 간의 주요 쟁점도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의 문제로 옮겨가면서 소위 대통령 선거판이 역겨운 폭로의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하고 있을 정도이다.

사실 과거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은 이미 계급사회의 가부장적인 봉건적 지배 하에서 부터 더욱 공고히 유지되고 재생산되어왔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성매수 문제에 대해서 오랜 기간 동안 이어져온 부모 사회로부터의 인식적 한계로 인하여 여전히 관대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성폭력, 성희롱에 대해서 가부장적 조직의 문화 또한 이러한 범죄적 행위를 눈감아주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도 최근 들어서 여성들의 성적 정체성의 자각과 우리 사회의 중요 사회 문제에 대한 소통의 장이 과거보다 광범위하게 열리면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단순히 덮고 넘어가자고 하는 분위기가 서서히 축소되어가고 있다. 말하자면 과거 같으면 쉬쉬하고 넘어갔을 법한 각종 성범죄 사건들이 피해자 여성 자신에 의해서 적극적으로 항변되어지고 가해자에 대한 법적 처벌이 미약하나마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한 섬마을에서 발생한 학부모라는 이름의 남성들에 의해서 집단적으로 이루어진 젊은 여교사에 대한 성폭력 범죄도 피해 당사자의 적극적이고 침착한 대처로 가해자들에 대한 법적 처벌, 나아가서는 향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성범죄로부터 취약한 환경에서 근무해야 하는 직장 여성들에 대한 대비책 수립이 공론의 장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남성의 여성에 대한 권력관계 하에서 재생산 되는 성적 착취는 여전히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제를 안고 있다. 이는 불평등한 권력관계 하에서 여성들이 남성들의 성폭력에 저항하는 데 한계를 지니는 지배와 피지배의 문제가 사회전반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음을 의미한다. 즉 여성이 남성들의 성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인간 사회의 거의 전영역에 걸쳐서 보여지고 있는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 그리고 공적․사적 영역에서의 사회적 불평등 구조가 오래된 역사적․사회적 근본 원인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3. 글을 마무리 하며

 

이 책을 읽으면서 필자의 경우 이미 대학교 시절 여성학에 대한 공부를 한차례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문제에 대해서 비교적 객관적이고 공평한 관점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여러 사회에서 드러나고 있는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의 문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이 책의 내용에 대한 주요 서술 배경이 되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필자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성폭력 사건들이 발생되고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인도 사회에서 일어났던 길거리나 버스 등에서의 여성에 대한 집단 성폭행 사건 소식을 접하면서 마치 인도 사회가 다른 여타의 어떤 나라보다도 훨씬 여성들이 성폭력에 노출될 우려가 높은 사회로 인식되면서 우리는 인도로 여행을 가고자 하는 주위의 여성들에게 신변 안전에 대한 우려의 충고를 하곤 해왔다. 하지만 미국에서 생활을 해왔거나 하고 있는 주위의 많은 지인들로부터 들어왔던 ‘미국은 여성과 어린이만 안전한 사회’라는 이야기가 어쩌면 이미 서부 개척시대부터 계속 되어 왔던 미국 사회에서의 어린이와 여성에 성적 착취의 만연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강도의 사회적 노력의 결과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즉 과거 개척 시대부터 너무나 많은 성범죄에 노출된 미국 사회가 그 어떤 사회보다도 앞장 서서 여성과 어린이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강력한 법적 보호를 담보할 수 있는 제도를 완성해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상 이상의 많은 성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미국 사회의 예를 저자로부터 전해 들으면서 이 책에서 저자가 얘기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여성은 영원한 주제(subject)다. 이때 주제란 종속, 혹은 예속, 심지어는 속국과도 거의 같은 말이다.

 

인류의 전 역사를 통해서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와 폭력은 한 번도 우리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게 관통되어 왔다.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저자가 말한 대로 이 때 ‘주제’라는 영어에서의 용어는 종속 혹은 예속이라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때 ‘여성문제’의 본질은 인류 역사에서 계속되어 온 가부장 사회에서의 여성의 남성에 의한 종속적이고 예속적인 지위에서 비롯되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 혹은 성적 폭력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남성 중심 지배 사회에서 종속의 지위가 아니라 평등의 지위로 재편하고자 하는 전 인류적 노력을 지속하지 않는 한 불가능 할 것이다. 현재 우리가 접하는 다양한 사회문제들, 즉 자본주의의 발전과 정치적 민주주의, 혹은 개인에 대한 권리의 문제 등과 마찬가지로 여성문제 또한 ‘여성해방’이라는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문제인 것이다. 실제로 현대 사회에 있어서 각종 시민운동이나 여성운동의 흐름은 서구 사회에서 인종 차별 반대 혹은 반전 운동 등과 아울러 여성의 성 차별에 대한 적극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해법을 요구해왔다. 그리고 다행히도 상당수의 진보적 남성들 또한 가부장적이고 반여성적인 사회 규범들에 대해서 함께 반대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여성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여성주의 의식을 강화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도 과거 ‘여성문제’는 인지하지도 못했고 존재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성희롱’이란 단어도 90년대에 비로소 보편적으로 사용되어질 정도로 그다지 오래된 용어가 아닐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의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내올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각종 매스컴을 장식하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 사건들, 심지어 대학 사회에서 조차도 만연하고 있는 남성 교수들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여학생들에 대한 이중적 착취(학문적 지배구조, 남성의 여성에 대한 착취)를 바라보면서 여성문제 속에 깊게 똬리를 틀고 있는 계급적 종속의 문제야말로 여성문제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저자의 말대로 ‘여성은 영원한 주제’임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참고자료>

 

[1] 리베카 솔닛,『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창비, 2015

[2] 글로리아 볼즈, 『여성학의 이론』, 을유문화사, 1982

[3] 마가렛 미드, 『성차의 형성과정』, 이대출판부,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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