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입학사정관제 축소 필요한가

[중앙일보] 입력 2013.01.12 00:00 / 수정 2013.01.12 00:00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교육계를 중심으로 입학사정관제 축소 여부가 쟁점으로 불거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서 대학 입학 전형 및 지원 방법을 단순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입학사정관제에도 수정이 가해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에 “스펙 경쟁만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과 “제도 정착에 힘쓸 때”라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스펙·사교육 경쟁 키우는 부작용 직시하자

이 범
교육평론가·전 서울
시교육청 정책보좌관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교과 성적’과 ‘비교과 활동’ 가운데 부모의 영향력이 더 크게 작용하는 쪽은? 말할 것도 없이 비교과 활동이다. 입학사정관제는 교과 성적에 더해 비교과 활동까지 반영하기 때문에 부모 학력·소득·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고, 그만큼 교육의 공공성과 기회 균등 원칙을 위협한다.

 흔히 ‘성적 위주 선발’을 비판한다. 하지만 서구 선진국 가운데 대입 전형에서 비교과 활동을 반영하는 경우는 미국과 영국밖에 없다. 독일·프랑스·스웨덴·핀란드 등 대부분이 성적(대학입시 성적과 내신 성적)만으로 선발한다. 캐나다의 일부 대학에서 자기소개서(에세이)를 요구하거나 프랑스의 일부 그랑제콜에서 추천서를 요구하는 등 부분적인 예외가 있을 뿐이다. 성적만으로 선발해도 선진 교육 하는데 지장이 없다. 즉 한국 교육 문제의 요체는 ‘성적순 선발’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문제는 성적을 얻기 위한 경쟁의 강도가 너무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회 개혁, 대학 개혁 차원의 과제다. 입학사정관제는 경쟁의 강도를 낮추는 효과는 없고, 경쟁의 영역을 확장할 뿐이다. ‘예전엔 성적만 관리하면 됐는데 이젠 비교과 스펙까지 챙기려니 너무 피곤하다’는 학부모들의 푸념은 의미심장하다.

 둘째 문제는 성적을 매기는 기준이 편협하다는 점이다. ‘정답 찾기’에만 집중해 다양한 역량을 키우도록 유도하지 못한다. 학생들은 임진왜란을 초·중·고 시절에 세 번 배우지만 한 번도 난중일기를 읽어보지 않는다. 난중일기를 읽어오라는 숙제도 없고, 수업시간에 이에 대한 토론도 없고, 시험시간에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짜낼 필요도 없다. 이러다 보니 학업 흥미도가 세계 최저 수준이고, 지식 교육과 인성 교육이 분리되며, 쓰기·말하기 등의 핵심 역량이 미비한 채로 성인이 된다. 난중일기를 다루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교사의 수업과 평가를 제약하는 관료적 통제가 서구에 비해 극심하고, 여기에 더해 대학입시(수능)가 ‘정답 찾기’만을 요구하는 객관식이기 때문이다. 입학사정관제는 이러한 교과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거의 효과가 없다. 한마디로 변죽 울리는 제도다.

 입학사정관제에 긍정적 효과가 있음은 인정한다. 최근 들어 진로교육에 관심이 커지고 학생들의 자율적 활동들에 대한 시각이 관대해진 데에는 입학사정관제의 공이 크다. 하지만 적어도 이를 계속 늘리거나 보편화시키겠다는 발상은 곤란하다. 사회적으로 합의 가능한 ‘한국형 입학사정관제’를, 제한적인 정원 비율 내에서 시행해야 한다.

 ‘한국형 입학사정관제’를 위한 제일 조건은 학생부에 적히지 않는 각종 교외 스펙의 제출을 금지하는 것이다. 3년 전 시행된 특목고 선발 개혁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전체 대입에서 입학사정관제가 차지하는 정원 비율은 아직 그리 높지 않지만, 최근 서울대에서 수시 정원을 80%로 늘리면서 지원자 전원에게 자기소개서를 요구하고 스펙 자료를 제약 없이 첨부할 수 있도록 해 사교육·스펙 경쟁에 기름을 붓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입 자율화’는 박근혜 당선인에 의해 제동이 걸릴 것이다. 대선 공약으로 발표된 대입 전형 단순화, 논술고사 출제 범위 제한 등은 공공성 강화를 위해 정부가 대입에 개입할 것임을 예고한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입학사정관제 또한 개편되고 제한돼야 마땅하다.

이범 교육평론가·전 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


교육 패러다임의 긍정적 변화 지속해 나가야

조동헌
단국대 전임입학사정관
최근 대입 제도에서 가장 큰 변화는 2007년부터 도입하기 시작한 입학사정관제라고 할 수 있다. 초기만 해도 선진국에서 100여 년 걸려 정착시켜 온 것을 우리나라에서 단기간에 잘 정착시킬 수 있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2009학년도 4476명에서 2013학년도 4만3138명으로 확대될 정도로 외형적으로 큰 폭의 성장을 했을 뿐만 아니라 공정성·신뢰성 확보로 질적으로도 안정 궤도에 들어서고 있다.

 입학사정관제 도입에 따른 변화는 우선 교육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과거에는 학생부의 교과 점수와 예비고사, 대학입학학력고사, 대학수학능력시험 등 성적 중심의 기계적 선발 방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지어야 하고, 시험 성적에 따라 당락이 결정됐다. 그러나 입학사정관제는 학생들의 학업능력뿐 아니라 적성과 소질, 잠재력 등을 고려해 대학의 건학이념과 모집단위별 특성에 맞는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모든 과정을 평가의 대상으로 삼는다. 선발에 있어 시험 성적 등 점수화된 결과에 대한 정량적 평가보다는 지원 동기 및 진로 준비 정도, 체험활동의 진로 연관성 및 지속성, 발전 가능성 등을 정성적으로 평가한다.

 둘째로 입학사정관제 도입 후 신입생 구성이 다양해지고 있다. 도서벽지나 읍·면 지역 등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교육환경에서 학교교육에 충실한 학생이 대학에 입학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또한 가정형편이나 신체적 장애 등 어려운 자신의 여건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 온 학생들이 대학에 진입하고 있다. 지원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열정을 지니고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해 온 학생이 늘고 있다. 또한 이들은 대학 생활 만족도, 진로 성숙도, 참여도 등이 높아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로 고등학교 교육이 정상화돼 가고 있다. 학생부 교과를 정성적으로 평가함으로써 학생들이 주요 교과 이외 수업에도 적극적으로 학습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또 교과 수업은 물론 동아리 활동, 진로 활동, 봉사활동, 체험 활동, 방과후 활동 등 의미 있는 다양한 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교사들도 학생 개개인에게 적합한 다양한 진로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줄 것을 적극적으로 대학에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입학사정관제가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공정성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혹의 눈초리도 있다. 그러나 여러 단계의 평가 절차를 거치고 다수가 평가함으로써, 한두 사람에 의한 주관적 결정을 차단함으로써 공정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해외 봉사활동, 올림피아드 입상, 교외 수상, 공인 어학시험 등 스펙 중심의 사교육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는 내용은 평가에서 제외함으로써 학교생활에 충실한 학생이 대학 진입이 용이할 수 있도록 평가하고 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했다. 분명한 점은 성적지상주의로 인한 폐단이 입학사정관제 도입에 따라 최근 몇 년 사이에 긍정적으로 변화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미비한 부분은 제도적으로 보완해 미래의 주역이 될 인재 선발과 공교육 정상화라는 본연의 궁극적 목표를 성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조동헌 단국대 전임입학사정관
posted by 바로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