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입력 2013.03.31 18:53:33, 수정 2013.03.31 23:31:28

특목고 이어 우수학생 입도선매
일반계고 슬럼화 등 부작용 커
공교육 살리기 취지도 못살려
“대폭 손질해야” 목소리 높아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A고에서는 3월 1학년 우수 학생 6명이 인근 자율형사립고(자율고)로 전학을 갔다. 앞서 지난해에도 우수한 학생 4명을 학교 반경 4㎞ 내에 있는 두 자율고에 빼앗겼다. A고의 한 교사는 “정원을 못 채운 자율고가 1년 내내 주변 일반계고에서 우수 학생을 빼간다”며 “일반계고의 몰락은 외부인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고 흥분했다. 다른 일반계고의 한 교장도 “특목고에 이어 자율고에서 우수 자원을 다 ‘입도선매’하고 남은 학생들을 데리고 얼마나 더 잘하라는 것이냐”고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이명박(MB)정부의 핵심 교육정책인 자율고에 대해 손질이 대폭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자율고가 학생선발과 교육과정, 학사운영 등을 자율로 하면서 수월성 교육을 통해 교육경쟁력을 높이자는 설립 취지는 못 살린 채 오히려 일반계고를 고사시키는 등 고교 교육체계 황폐화의 주범으로 꼽히면서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도 인사청문회에서 어떤 식으로든 현행 자율고 체제에 메스를 대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31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자율고는 2009년 7월 지정된 서울 13개교를 시작으로 현재 서울 24개교(전국단위로 모집하는 하나고 제외) 등 전국에 49개교가 있다. MB정부는 당시 자율고 도입 취지로 ‘학생·학부모의 학교 선택권 확대와 시대 흐름에 맞는 자율·다양성 교육’을 강조했다. 아울러 일반계고가 우수 학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자구노력을 할 테고, 여기에 자율고에 들어갔을 예산 등을 지원하면 전체적으로 공교육의 질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와 반대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자율고가 중학교 성적 우수학생을 싹쓸이하면서 일반계고의 학력저하가 뚜렷한 게 가장 심각한 문제다. 이는 민주통합당 유기홍 의원실이 지난해 9월 서울지역 자율고·일반계고 신입생의 중학교 내신성적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서울지역 자율고는 중학교 내신성적이 50% 이내인 중·상위권 지원자 중 추첨으로 신입생을 뽑는다.

분석 결과 지난해 자율고 신입생의 49.7%가 중학교 내신성적이 상위 20% 안에 들었다. 반면 일반계고에서는 내신성적 상위 20%에 든 학생이 18.1%에 그쳤다. 특히 A고 사례처럼 자율고를 옆에 둔 일반계고일수록 직격탄을 맞았다.

서울 일반계고 10곳 중 3곳은 재학생 3분의 1 이상이 수능에서 최하위 성적을 받는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사설 입시기관인 하늘교육이 서울 일반계고 214곳의 2012학년도 수능 성적을 분석한 결과 재학생 3분의 1 이상이 언어와 수리, 외국어영역에서 평균 7∼9등급(수능은 9등급으로 숫자가 높을수록 하위권)을 받은 학교가 32.7%(70곳)나 됐다. 7∼9등급은 전국 백분율 석차로 최하위 23% 이내로 4년제 대학 진학이 사실상 어렵다. 7∼9등급이 재학생의 절반이 넘는 일반계고도 중랑구의 B고(56.9%)와 중구의 C고(52.5%)를 포함해 4곳이나 됐다.

자율고가 교육과정을 설립 취지대로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살려주는 데 맞추지 않고 상위권 대학 진학실적을 높이기 위한 입시 위주로 짜는 것도 문제다. 자율고가 특목고와 함께 ‘입시학원화’ 및 ‘서열화 조장’ 비판을 사는 대목이다.

양승실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은 “자율고 구조조정 등 전반적인 개선작업이 필요할 뿐 아니라 자율고처럼 중요한 교육정책을 도입할 때는 사전에 적정성을 평가하는 ‘교육정책 영향평가’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강은·윤지로 기자

posted by 바로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