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닷컴] 입력 : 2013.04.17 14:55

부실한 교육과정·인기 학과 쏠림 현상 문제
융합형 수업으로 단점 극복한 사례도 있어

최근 연세대와 한국외국어대가 자유전공학부 폐지를 발표하며 '자유전공학부 존폐 논란'이 재점화됐다. 이에 앞서 중앙대는 지난 2010년 신설 1년 만에 자유전공학부를 폐지했고 성균관대도 이듬해 폐지 대열에 동참했다. 이 같은 흐름에 내심 자유전공학부 지원을 희망했던 (예비)수험생은 혼란에 빠졌다. 최근 상황에 대한 자유전공학부 재학생의 속내는 어떨까? 폐지를 코앞에 둔, 혹은 여전히 승승장구 중인 자유전공학부 재학생에게 직접 물었다.

◇인기 학과 쏠림 현상?… "부실 커리큘럼 방치한 대학 책임"

지방 소재 모 대학 자유전공학부를 졸업한 A(22)씨는 최근 불거진 자유전공학부 존폐 논란에 대해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유전공학부 1기 졸업생인 그는 입학 후 적잖은 혼란을 겪었다. "입학해보니 자유전공학부생용 커리큘럼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았어요. 전담 교수진은 물론, 선배 한 명 없는 상황에 방치됐죠. 당시엔 우리 학교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이번 사태를 보니 '서울 명문대도 다를 게 없구나' 싶더라고요."

대학 자유전공학부 폐지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대학 측이 자유전공학부를 폐지하며 내세우는 표면적 이유는 두 가지다. △'융합 교육'이란 설립 취지와 달리 (취업 잘되는) 경영·경제학과 쏠림 현상이 심하고 △결국 '고시 대비반'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학생들의 생각은 좀 다르다. 한국외국어대 자유전공학부 재학생 B(20)씨는 "입학 후 부실한 교육과정 때문에 실망이 컸다"며 "전공을 2학년 때 결정한다는 점이 좋았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전공 탐색 기회가 많지 않더라"고 말했다. 입학 한 달 만에 폐지 통보를 받은 신입생의 충격은 상상 이상이다. B씨의 학과 1년 후배인 C(19)씨는 "신설되는 L&D학부는 '외교관 양성용'이어서 내가 원하는 전공과는 거리가 있다"며 "전과(轉科)와 반수(半修) 사이에서 고민 중"이라고 토로했다.

연세대 자유전공학부 쪽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학부 재학생 D(20)씨는 "이번 사태의 책임은 제대로 된 커리큘럼을 제공하지 못한 대학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 3 때 '(자유전공학부에 진학하면) 다양한 학문을 접하며 자신에게 맞는 전공을 찾게 될 것'이란 학교 측 설명을 철석같이 믿었어요. 하지만 입학 이후 제가 들은 강의는 상경계열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었죠.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상경계열 쏠림 현상' 때문에 폐지한다니…. 무책임한 결정이에요."

◇잘나가는 곳도 있다!… 비결은 '분야 넘나드는 융합형 교육'

모든 대학 자유전공학부가 폐지 수순을 밟고 있는 건 아니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서 설계 전공 과정을 밟고 있는 범유경(3년)씨는 대학 생활이 무척 만족스럽다. "1학년 필수 이수 과목 '주제탐구 세미나Ⅰ'의 경우, '시간'이란 주제 아래 3개 분야(물리학·문화인류학·사회학) 교수님이 강의를 동시에 진행하셨어요. 일종의 융합형 수업이었죠. 그런 경험 덕분에 제게 맞는 전공을 충분히 탐색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재학생 중엔 미학·작곡·디자인 전공으로 나아가는 경우도 있을 만큼 전공 선택의 폭이 넓다. 범씨처럼 설계 전공을 택하면 자신이 원하는 학문을 조합, 새로운 전공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전 기초법학·사회학·심리학·언론학 등을 아우르는 '법소통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동기생 중 한 명은 심리학과 컴퓨터공학을 조합한 '인지과학'을 전공 중이고요. 서울대 내에서도 우리 학부에 대해 한때 '경영학과 정원 늘리려고 만든 학부'란 비아냥거림이 있었어요. 지금은 단연 교내 최고 인기 학부 중 하나죠. (학부 설립 취지인) 융합교육 측면에서도 '성공적 실험'이란 평가를 받습니다."

고려대 자유전공학부 역시 뚜렷한 특색으로 이름나 있다. 지원자의 계열을 따지지 않는 서울대나 이화여대와 달리 고려대 자유전공학부는 문과생에게만 입학을 허용한다. 재학생은 법학·행정학·경제학이 융합된 연계 전공 '공공거버넌스와 리더십'을 반드시 이수하는 한편, 제1전공(인문사회계열 23개 학과 중 택일)도 가져야 한다. 이동선(2년, 경제 전공)씨에 따르면 고려대 자유전공학부는 "법학을 기본으로 다른 전공 간 융합을 추구하는 학과"다. 조동희(2년, 경영 전공)씨는 "우리 학과는 자유전공학부의 단점을 가장 잘 극복한 사례"라고 자랑했다. "(전공 선택 시 해당 학과로 학적이 바뀌는 다른 대학과 달리) 우린 졸업할 때까지 자유전공학부 소속이에요. 제 경우 졸업 시 '자유전공학부-제1전공 경영'이라고 적힌 졸업장을 받습니다. 다른 대학 자유전공학부 친구들처럼 소속감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죠."

이화여대엔 자유전공학부와 성격이 유사한 스크랜튼학부가 있다. 김현정(3년)씨는 고 3 때 스크랜튼학부 연계 전공인 '디지털 인문학 트랙'에 끌려 이화여대 입학을 결심한 경우. 지난해 통계학을 제1전공으로 택한 그는 디지털 인문학 트랙을 복수전공 중이다. 실제로 스크랜튼학부엔 디지털 인문학 트랙 외에도 △통합문화적 연구 트랙 △과학과 생명 트랙 △사회와 정의 트랙 등 6가지 연계 전공이 있어 각자 원하는 분야를 공부할 수 있다. 스크랜튼학부 역시 융합형 교육 커리큘럼이 탄탄한 편이다. 최은정(4년, 정치외교 전공)씨는 "스크랜튼학부에선 이과계열 수업을 반드시 2개 이상 수강해야 한다"며 "규정 덕에 대학에서 이과 친구들을 사귀며 새로운 시각을 익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학교 측 지원도 파격적이다. 스크랜튼학부 재학생은 전원 최소 1년간 장학금 혜택을 받는다. 해외 대학과의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도 주어진다. "대학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찾는 일이에요. 그런 면에서 1년의 전공 탐색 기간이 주어지는 자유전공학부는 더없이 매력적이죠. '융합 학문 시대'에 다른 분야 기초 학문까지 두루 배울 수 있다는 것도 큰 혜택이고요. 장점이 많은 학부여서 입학 후 한 번도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posted by 바로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