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입력 2013.04.26 18:50:38, 수정 2013.04.26 21:55:12

한국 특유 끈끈한 가족문화… 취업난 맞물려 ‘캥거루’ 양산
'고학력·중년화' 사회문제로… 소비감소·출산율 저하 역풍

#1. 10년 넘게 예식장 식당에서 일해온 윤선자(58·여)씨는 아파트경비로 있는 남편과 열심히 저축한 끝에 몇년 전 작은 상가를 장만했다. 노후대책이 마련된 것 같아 든든했다. 하지만 막내아들(33)이 창업을 한다며 돈을 달라고 조르면서 고민에 빠졌다. 아들은 전문대 졸업 후 한 번도 취직한 적이 없다. 윤씨는 “직장이 없으니 장가도 못 갈 것 같아 뭘 하나 차려줘야 하나 싶다가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으니 불안하기만 하다”며 “스트레스로 안면마비 증상까지 생겼다”고 한숨을 쉬었다.

#2. 서울의 명문 사립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이영훈(35·가명)씨는 졸업 후 1년 넘게 취직이 안 되자 대학원에 진학했다. 3년 만에 석사학위를 땄지만 원하는 회사에 들어갈 수 없었다. 스펙을 더 쌓기 위해 영어도 배울 겸 아프리카로 1년간 해외봉사를 다녀왔지만 취업 문턱은 여전히 높았다. 이씨는 “이제 박사학위를 따려고 하는데 부모님이 노후 대책으로 마련해 둔 돈을 학비로 다 써버릴까봐 죄송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성인이 되어서도 자립할 능력이 없어 부모에게 얹혀사는 ‘캥거루족’이 100만명을 넘어섰다. 캥거루족은 2000년 이후 청년실업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생긴 신조어로, 증가 원인을 단순히 개인의 능력이나 의지부족으로 치부할 사안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26일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만 25∼44세의 캥거루족은 약 116만명으로 추산된다. 2000년 82만명에서 10년 새 1.4배나 늘었다. 특히 중년 캥거루족이라 불리는 만 35∼44세는 같은 기간 4만5000명에서 17만4000명으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

30세 이하는 군복무나 취업준비 등의 이유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해도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긴 캥거루족의 증가는 세대 간 갈등 유발 등 향후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학력별로는 전문대 이상이 64.6%에 달한다. 특히 4년제 대졸자는 2000년 21.9%에서 2010년 34.4%로 늘었다. 고령·고학력 캥거루족이 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특유의 부모와 자녀 간 끈끈한 가족문화, 경제침체로 인한 취업난 심화 등의 사회 구조적 문제가 맞물려 캥거루족을 양산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서강대 전상진 교수(사회학)는 “우리나라는 (가족 간 연대를 중시하는) 유교식 문화가 남아 있는 데다 최근 부모와 자녀 간 권위적이고 수직적이던 관계가 친구 같은 수평적 관계로 변하다 보니 다 큰 자식이 부모와 함께 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더 줄어든 것 같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젊은층의 취업과 결혼 포기는 주택시장 침체와 소비 감소, 출산율 저하로 이어져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장기불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려대 이명진 교수(사회학)는 “최근 청년고용률이 떨어지는 대신 50대 고용률이 역대 최고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노동시장에서 청년층이 숙련된 장년층에게 밀리는 현실을 보여준다”면서 “상대적 약자인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을 위해 여러 지원책을 추진했듯이 청년들을 위한 고용촉진책을 마련하고, 장기적으로 교육과 노동이 연계되도록 교육정책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미·조병욱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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