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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취업 수도공고생, 수석졸업 김예걸씨

[머니투데이] 이현수 기자 |입력 : 2013.04.23 05:45

 

"펜션 신축한 사람이 전기를 새로 신청해서 다녀왔어요. 단상전기가 있고 삼상전기가 있는데, 모터가 제대로 작동을 안 하니까 삼상을 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모터하고 사용 경과지, 도면을 확인하고 수정했습니다."

앳된 얼굴의 신입사원이 전기 전문 용어들을 쏟아낸다. 생기 가득한 표정과 흙묻은 운동화가 현장을 고스란히 전해줬다. 지난 1월 한국전력에 입사한 김예걸 사원(19)이다.

입사 4개월 차 '햇병아리'답지 않은 '포스'가 느껴지는 김씨는 지난 2월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마이스터고 1기'출신이다.
수석입학에 이은 수석졸업이다. 졸업 전 이미 대졸자들에게도 '하늘의 별따기'로 불리는 한전에 취직했다. 그는 "3년 동안 특화된 교육을 받으면서 업무에 밑바탕이 되는 지식을 습득했다"고 말했다.

◇전교 1등, 과고 대신 마이스터 선택한 이유
김씨는 건대부중 재학 시절 줄곧 전교 1등을 달렸다. 졸업 당시 내신석차 백분율은 2.995%. 자신과 1, 2등을 다투던 친구들은 외국어고나 과학고로 진학했다.

김씨가 졸업과 동시에 마이스터고를 가겠다고 하자 학교에선 당연히 난리가 났다.
마이스터고가 막 생길 무렵이라, 일반인들에게는 개념도 낯설던 때였다. 고교 지원에 필요한 생활기록부 서류를 받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선생님들이 저는 물론이고 아버지도 따로 불러 말렸죠. 지원 마지막 날에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빙 둘러앉아 설득을 했나봐요. 아버지는 거꾸로 '아들이 마이스터고를 가야한다'고 선생님들을 설득하고요. 제 결심이 확고했기 때문에 아버지도 저를 믿어주셨습니다."

마이스터고를 고집한 이유는 뚜렷한 목표 없이 대학에 가고, 취직을 해야하는 게 내키지 않았기 때문. "요즘도 그럴 테지만, 아무 목표도 없이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저도 막연하게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가 대학교 입학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진로를 생각하자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3때 진로고민을 하다 내린 결론이 '전기'였다. 어릴 때부터 전기전자, 기기에 관심이 많았고, 엔지이너였던 아버지의 영향도 받았다. 졸업 무렵 기술 선생님에게 수도공고 얘기를 듣고 망설임없이 선택했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굳이 대학이 목표가 아니라면 마이스터고를 선택해도 좋다'고 하셨죠. 제가 조언을 구하자 놀라시는 것 같았지만, '적성을 봤을 때 충분히 고려해볼만하다'고 격려해주셨습니다."

◇간판? '실력으로 승부한다'

김씨가 한전에 들어와서 하는 일은 '현장 챙기기'다. 한전 양평지사의 관리 지역인 청운면, 단월면, 용문면 등에 있는 집집을 돌아다니며 전력 상황을 체크한다. 주로 새로 전기를 신청하는 사람들을 만나 확인하고, 전기를 공급해주는 역할이다. 현장 얘길 하니 다시 반짝반짝 빛이났다.

"최근에 농사를 재개하니까 논에 물대시려고 전기신청을 많이 하세요. 지하수는 펌프를 이용해야 하잖아요. 농사형이 저렴한데, 실제로 농사 하지도 않고 일부러 저렴한 것 쓰려고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확인해야 하고요. 또 사유지에 전주, 전봇대가 꽂혀있으면 혐오시설로 생각하잖아요. 그런 것 판단해서 옮겨드리고 있고요."

고등학교 때 배웠던 내용이 현장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지침서가 98%가 일치해요. 펌프를 돌리는데 필요한 배선, 도면 등은 이미 배운 것들입니다. 전기기기, 전력설비 등이 학교 과목이었는데 실습한 내용들이 적용되는 부분이 많아요. 아직 많은 경험은 못했지만, 일을 하면서 '아 이게 내가 배웠던 건데, 그거랑 같네'라고 느끼는 것이죠."

고등학교 때 배운 내용은 대입 수능으로 갈무리하고, 대학 수업은 시험 한 번으로 잊어버리는 게 다수의 현실이지만, 김씨와 같은 마이스터고 졸업생들은 고교 때 배웠던 내용을 사회에 나와서 그대로 적용하고 있었다.

"대학을 나와서 기술자가 될 수도 있죠. 4년간의 이론 경험이 중요하지만, 어떻게 보면 실무 경험이 더 유용하다고 생각해요. 마이스터고에서는 실무 경험을 3년간 미리 해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중요한 것은 간판이 아니라 실력이니까요."

김씨는 최근 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에 2030정책 자문단 멤버로도 추천됐다. 청년위원회는 대통령 직속으로 장관급 12명이 참여하며, 이달 말 출범을 앞두고 있다.

300명 규모의 자문단에는 김씨를 포함해 우주인 고산씨, 박신영 폴앤마크 소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 취업난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20대, 30대의 현장 목소리를 전달해주는 역할로, 현장취재를 뒤 리포트를 만들어 청와대와 각 부처에 전달하게 된다.

◇목표 없는 마이스터고 입학은 경계해야
그래도 대학생활이 아쉽지 않을까. 전교 1등 성적이 아깝지 않을까. "아직도 주위에서는 그런 얘길 많이 해요. 주위의 좋지 않은 시선이 있고 압박이 있을 수가 있어요. 그런데 이 길로 안가고 저 길로 갔다고 해도 또 다른 장애물이 있겠죠. 이런 일을 하고 싶은데, 주위 시선 때문에 안 하는 건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주변 친구들의 상황을 봐도 그랬다. "부모님 의견에 따라 대학교에 간 친구들이 많죠. 그런데 매일 알바에 허덕이고, 막상 하고 싶은 공부도 못하니까요. 그런 친구들 보면 목표없이 허덕이고 있는 게 안타깝죠."

김씨는 "가슴으로 머리로 생각해서 결정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씨가 수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 헛되지 않도록 한전은 날개를 달아줬다.

그는 단순히 대학에 가기 싫어 마이스터고에 입학하려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수도공고는 취업이 100%입니다. 그런데 취업 100%라고 해서 모두가 한전에 취직하는 건 아닙니다. 입학설명회에 가 보면 다들 마이스터고 입학 후 한전에 갈 수 있냐고 묻는데요, 여기서도 노력을 한 사람만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어요."

김씨는 "지금은 기술자지만, 어학 쪽도 좋아해서 어학공부를 꾸준히 한 뒤 해외에서도 활동하고 싶다"며 "작게는 한전에, 크게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