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2.26 03:05 | 수정 : 2013.02.26 15:25
성균관대 신입생 학부모 2000명, 자녀들에 편지… 그 속에 담긴 부모 마음
암 수술 받고 자식 먼저 걱정 "미안해, 나때문에 가슴 아팠지"
미숙아 아들에 가슴 태웠는데… "사랑한다, 이렇게 잘 자라줘서"
- 성균관대 올해 신입생들에게 부모가 보낸 편지들. 가족 동의를 받아 원본과 내용을 공개한다.
지난 1일 대전 서구 용문동의 조모(53·노점상)씨는 집에서 홀로 딸에게 편지를 적기 시작했다. 성균관대가 올해 신입생 학부모에게 보낸 통지문 때문이었다. 통지문엔 "자녀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말씀이 담긴 편지와 부모님께서 자녀에게 권하고 싶으신 책을 추천해 주십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조씨는 지난달 31일 밤 9시쯤 이불 공장에서 일하고 퇴근한 아내와 함께 딸에게 보낼 편지에 뭐라고 써야 할지 상의했다. 다음 날 일찍 출근해야 하는 아내는 조씨에게 "편지는 당신이 쓰세요"라고 말했다. 다음 날 낮, 조씨는 공을 들여 딸에게 편지를 썼다. 아파트 단지를 돌며 매일같이 노점(露店)을 펼쳐 장사를 하며 키운 딸이었다. 조씨의 딸은 27일 성균관대 수학교육과에 4년 장학생으로 입학한다.
성균관대는 지난 2010년 입학식부터 신입생의 학부모에게 총장의 축하 편지와 추천 도서 목록, 빈 편지지 한 장을 보내 자녀에게 추천하고 싶은 도서 한 권과 자녀에게 보내는 편지를 답장으로 받고 있다. 부모가 추천한 도서와 편지는 입학식 당일 학생들에게 직접 전달된다. '오거서(五車書) 운동'이라 이름 붙여진 이 행사는 어느덧 이 대학 신입생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드는 '대표 행사'가 됐다.
조씨는 지난 2011년 1월 갑상샘암 진단을 받고 같은 해 4월 수술을 받았다. 조씨는 편지에서 "아빠가 뜻하지 않게 아파 일을 못 하면서 집안의 생활이 많이 어려워졌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으며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게 됐구나"라며 "세상에서 자식한테 고마움을 느끼면서 감사하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아빠와 엄마는 항상 그 생각을 한단다"라고 적었다.
24일 오전 기자와의 통화에서 조씨는 "하숙집에서 딸과 함께 짐을 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조씨는 "좋은 부모를 만나 경제적으로 풍부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면 든든한 뒷받침 속에서 공부했을 텐데 그렇지 못한 딸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며 "지금까지 잘해온 딸의 능력을 믿고 앞으로도 잘해 나가리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 이철원 기자
서울로 공부를 하러 올라가게 된 아들로 인해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린 학부모도 있었다. 함석돈(51)씨는 편지에서 "자취를 시작한 첫날 너희 할머니가 쌀자루를 머리에 이고는 고등학교에 오셔서 교무실 앞에서 아빠를 기다리셨다"며 "할머니가 너무 초라해 보이고 촌티가 나서 아빠는 창피하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나는구나"라고 회상했다. 함씨는 편지에서 "할머니는 연탄불에 사용하는 밥솥, 냄비, 찬장, 이불, 스테인리스 상, 베개 등의 살림 도구를 준비해 놓고 하룻밤도 안 주무시고 (경북)영주로 올라가셨다"며 "아무리 초라하게 보이고 촌티가 나도 어머니는 단 한 분, 그 어머님을 아빠는 너무 좋아했었다"고 적었다. 함씨는 이어 아들에게 "아들에게 처음으로 말하는구나. 아빠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함씨가 사는) 경북 점촌에서 아들을 생각할 때면 뿌듯한 마음으로 직장생활을 할 거란다"고 적었다.
"1.9㎏. 아이가 태어났을 때 몸무게다. 병원에서는 '출생했을 때 생존 가능성은 25%'라고 했다. 그 조그만 아이의 가슴을 뚫어 하루 10cc의 우유를 공급했다. 그때 우리의 소원은 절실하고도 간단했다. '제발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그래서 너의 생일은 출생일이 아니라 병원 퇴원일이다."
광주광역시 풍암동의 권경안(49)씨는 미숙아로 태어났지만 건강히 자라 이 대학 글로벌경제학과에 합격한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권씨는 편지에 합격 당시의 순간을 담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27일 01시 40분. '아버지, 합격했어요!' 잠자고 있던 내 방으로 그 아이가 흥분한 목소리로 뛰어들어왔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아들을 껴안자마자 나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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