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일반고에서 우수한 학생이 사라지고 고교 서열화가 진행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과학고, 외국어고 등 특목고가 도입된 후 끊임없이 이어진 논란이다. 2010년 이명박 정부가 도입한 ‘고교 다양화 300’ 정책은 이 같은 현상을 고착화시켜, 불과 3년 만에 과거의 고교 비평준화 시대를 연상케 하는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다. 정책 도입 단계에서의 예상되던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일반고 슬럼화는 ‘예고된 재앙’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고교 평준화 정책은 1974년 중학교 입시지옥과 사교육비 억제를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평준화 제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학습능력이 다른 학생들을 같은 장소에 모아놓고 수업을 진행하면서 교사들이 지도에 어려움을 겪고, 전체적인 학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83년 특목고가 처음 도입됐고, 2002년부터 자율형 사립고가 시범 운영됐다. 하지만 영재학교 성격이 강한 특목고와 달리 자사고는 전면 도입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됐다. 일반고와 비슷한 형태의 자사고가 도입될 경우 자사고의 ‘선발효과’로 인해 일반고가 슬럼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교육계 내부에서도 끊이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기숙형 공립고 150곳, 마이스터고 50곳, 자사고 100곳을 지정하는 ‘고교 다양화 300’이라는 정책을 추진했다. 자사고가 지나치게 많이 책정됐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정부는 개의치 않았고, 우려는 현실이 됐다.
자사고는 외형적으로는 누구나 지원이 가능하지만, 중학교 성적 상위 50%라는 유일한 단서가 있다. 일단 상위 50%로 학교의 입학생 자체가 좁혀지는 것이다. 현실적인 진입 장벽도 있다. 학비 자체가 연간 평균 800만원에 이르고, 사교육비 등을 감안하면 서민층에는 대학등록금 수준의 가계부담으로 작용한다. 하나고 등 일부 자사고는 연간 학비가 2000만원에 육박한다. 특히 자사고 내에서도 입시 명문고 위주로 쏠림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우수학생을 깔때기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또 최근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로 적지 않은 중상위권 학생들이 눈길을 돌리면서 일반고로 진학하는 우수학생은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고교 시스템을 유지하면 일반고 슬럼화를 막기가 더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자사고가 대입에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일반고의 성적이 더 떨어지면 자사고 등으로의 쏠림현상이 심화되는 악순환이 고착화될 것이 뻔하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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