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일상의 성정치학을 통해본 여성주의 인식론
글 작성 : 바로코리아(오정삼)
<목차> 1. 여성주의 인식론 : 언어, 경험, 인식 2. 성별분업과 평등의 문제 3.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성과 권력의 문제 4. 성적 자기 결정권 5. 여성에 대한 성착취 문제 |
1. 여성주의 인식론 : 언어, 경험, 인식
나는 몇 년 전 브라질에서 열린 국제 인권 회의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흑인 여성운동가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나보다 피부색이 ‘희었지만’ 자신을 흑인으로 강하게 정체화하고 있었다.(정체성은 ‘임의적’인 것이다). 브라질은 전 세계에서 흑인 인구 비율(약 35% 이상)이 두 번째로 높은 나라로, 인종 차별이 심각하다. 그에게 페미니스트로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드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흑인 남성과는 여성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고, 백인 여성과는 인종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어. 대화 상대가 없어 외롭다. 인종 없이는 젠더는 작동하지 않으며, 젠더 없이 인종은 구성되지 않는다.” 1
1.1. 인용 이유
여성학의 일차적인 과제는 ‘여성문제’를 발굴하고 구성하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여성주의의 역사, 여성학의 역사는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문제에 대한 발굴과 의미의 확인이다.
1.2. 여성주의 인식론의 언어, 경험, 인식
1970년대 무렵 여성주의 학자들의 주장은 이전의 지식체계는 여성의 경험이나 삶이 왜곡 혹은 배제되어 왔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의 직접적인 이유는 언어자체의 남성 중심성에 근거한다고 보았다. 즉, 남성들만이 권력을 가질 수 있었으며 여성들은 그들의 억압의 경험을 정확히 나타내고 상징화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다시 말해서 남성들이 만들어낸 이름과 그에 기초해서 그려진 세상만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이 남성의 제한된 경험에 의거한 인식은 그 정당성을 유지해왔고 이를 인정하고 거부하는 인간들은 불경스럽거나 일탈적인 인간으로 배제되어 왔다. 따라서 현실은 이러한 이름을 짓는 권력을 가진 지배적 집단의 인식을 기반으로 구성되어 왔고, 이러한 현실 속에서 여성들에 대한 억압은 언어와 경험으로 표출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여성주의 인식론의 언어는 그 존재의 역사성과 사회성을 가지게 되며 이에 대한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멸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과정인 것이며 가부장제 사회에서 언어와 경험, 그리고 인식은 남성중심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여성주의의 인식론적 접근을 위해서 우리는 ‘일반 평균인의 관점’을 통해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2. 성별분업과 평등의 문제
또 내가 생각하는 여성운동은 여성이 ‘공적 영역’에 진출하는 것을 넘어, 남성이 ‘사적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정신 차려야 할’ 집단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다. 남성들이 집에서 노동하지 않는 한, 여성에게 사회 진출은 이중의 중노동만을 의미할 뿐이다. 2
2.1. 인용 이유
가부장 사회에 있어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서 열등한 지위에 있게 되는 근원은 위계적인 남녀 성별의 분업에 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위계적인 성별 분업은 남녀간의 권력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쳐왔다. 문제는 이러한 여성관이 여성들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2.2. 성별분업과 평등의 문제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 사회에서 남녀 성별분업의 구조 형성은 역사적으로 신분제적 봉건질서를 합리화 하는 기제로서 오랜 전통의 유교 윤리와 함께 형성되어 왔다. 이와 같은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서구 사회와 비견하여 남녀간의 성차에 기반한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으로의 성별 분법의 관념이 더욱 확고하게 존재해왔다. 즉, 모든 여성은 언제나 잠재적인 어머니와 아내로 규정되어 왔으며 이러한 규정에 의해 여성은 노동시장에 참여하면서도 일차적으로 노동자로 평가 받기 이전에 잠재적인 어머니로서의 아내로서의 역할이 먼저 규정된다. 문제는 이러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여성관이 여성 노동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즉, 여성은 취업을 한다 하더라도 일차적으로 노동자로 인식되지 못하고 잠재적인 어머니, 아내, 며느리로 인식되는 반면에 남성들은 실업 상황에서도 일차적으로 잠재적인 노동자로 인정되고, 평생 직장을 가지고 가족의 생계책임자로 규정된다. 결국 여성의 경우 어떠한 직종에 종사하던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할 존재로 규정되는 이중노동의 존재로 낙인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의 전 생애주기에서 가장 생산적인 노동을 할 수 있는 시기인 20~30대의 나이에 여성들은 출산, 양육의 시기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경쟁의 심화 과정에서 시장의 논리와 능력주의의 논리가 각 사회의 전 영역을 파고드는 시첨에서 가사와 출산․양육을 위한 노동과 시장노동의 이중적인 부담을 갖고 있는 여성은 남성과의 경쟁에서 불공정한 경쟁에 내몰릴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여성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단순한 기회의 평등은 노동시장에서의 여성에 대한 명시적인 직접적인 차별이나 노동시장에의 진입 이후에 차별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는 있으나 성별 분업구조에 기반한 노동시장 내에서의 성차별과 간접적인 차별, 그리고 불평등을 해소하는데는 여전히 한계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기회의 평등이 가지고 있는 여성문제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서 조건의 평등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3.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성과 권력의 문제
기존의 정치 개념을 근본적으로 의심하지 않으면서 사회적 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여성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인장한다 하면서도, 가정폭력의 원인을 군사독재 폭력 문화의 산물로 본다거나(조선시대에도 가정폭력은 있었다), 성매매나 성폭력을 ‘외세 타락 문화’의 결과라고 보는 것(한국의 성폭력, 가정폭력 발생률은 세계 수위권이다)이 대표적인 모순된 사고이다. 여성 억압은 계급/민족 모순으로 환원되지 않는 남성 지배의 문제, 여성과 남성 간 권력 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3
3.1. 인용 이유
인간의 의식과 인식은 단순한 자신의 경험적 구조에 의해서 제약받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에 대한 성 역할이 확연히 이분화되어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문제의 해결을 위한 본질적 이해가 필요하다.
3.2.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성과 권력의 문제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강고한 성차별의 구조와 타협주의가 생존 전략의 한 형태로 고착화 되어 왔다. 즉 한국 사회에서 가부장제의 견고성은 여성들에게 총체적인 절망감을 내면화 시키면서 저항의 의식이 싹트는 것을 억압하고 있다. 이는 인종 차별이 체계적이고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사회일수록 흑인들이 백인에 대한 열등감을 내면화하고 그들에 대한 백인의 통치와 지배를 정당화 시켜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인 질서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 여성 스스로가 만들어 갈 수 밖에 없다. 특히 국가 기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남성들이 국가 정책 결정의 과정에서 여성문제를 먼저 해결해주지 못할 것은 분명한 것이다. 따라서 여성운동의 독립성과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여성들 스스로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남성지배의 문제, 나아가 여성과 남성과의 권력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4. 성적 자기 결정권
성적 자기결정권 주장은 근대 자유주의의 남성 논리를 비판하기보다, 기존의 논리에 여성도 포함시켜줄 것을 요구한 것이었고, 이는 여성의 삶에 기반을 둔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었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순결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으로 정치적 의미가 있는 것이지, 여성주의의 최종 목표라고는 할 수 없다. 4
4.1. 인용 이유
성적 각본은 사회문화적이고 역사적인 환경에 의해서 매우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따라서 인간의 성에 대한 생각과 경험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사회화의 과정을 통해서 영향을 받게 된다.
4.2. 성적 자기 결정권
우리 사회에서 지배적인 성적 각본을 분석해보면 가장 확실한 형태는 이중적인 성규범이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유교문화의 영향에 의해서 상당히 엄격한 성윤리가 사회적으로 관철되고 있다. 특히 여성과 남성에 대한 성규범의 기준은 완전히 이분화 되어 있다. 즉 여성들에게 사회적으로 요구되어지고 있는 순결과 정절의 강요는 남성에게는 요구되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다수의 남녀가 이러한 이중적 성윤리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여성은 성관계나 기타 성적인 행동에 있어서도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반면에 남성의 경우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를 갖는 것을 이상적인 자세로 여긴다. 또한 여성은 성적 욕망이 없는 존재로 간주되기도 하고 남성의 경우는 강한 성적 욕망과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을 충족시켜야 하는 존재로 인정된다. 이러한 인식은 매춘산업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는 주장의 논리를 뒷받침할 뿐만 아니라 전쟁지역에서의 여성에 대한 성학대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용한다.
따라서 남성중심의 가부장적인 위계질서의 성문화를 극복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의 개념이다. 이는 성적 자기 결정권의 문제도 민주주의의 이념에 의해서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여성의 몸은 자기 스스로의 성적 결정에 의해서 보호받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의 것이라는 권리 의식이 전제되어야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성적 통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에 머물지 않고 여성 스스로 양성 평등의 사회적․정치적 권리를 보장 받기 위한 노력을 발전시켜가야 할 것이다.
5. 여성에 대한 성착취 문제
이제 성판매는 성별뿐만이 아니라 빈곤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서구 유럽 남성들의 동남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지로의 섹스 관광에서, 성판매자는 현지 여성뿐만 아니라 소년으로까지 확대된다. 빈부 격차로 인해 성매매는 점차 젠더뿐만 아니라 계급, 인종 모순의 성격을 띠게 된다. 5
5.1. 인용 이유
인류의 오랜 악습인 여성에 대한 성착취의 문제는 현대 사회에 이르러 단순히 성별억압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세계가 안고 있는 모순들(빈부 격차, 계급, 인종의 모순 등)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따라서 이에 대한 해결은 사회전반의 모순에 대한 해결과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5.2. 여성에 대한 성착취 문제
인류의 오랜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은 계급사회에 의한 가부장제적 제도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유지되고 재생산되어 왔다. 따라서 자본에 의한 성매수와 같은 여성에 대한 착취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이중적인 성규범 하에서 합법적인 성관계(혹은 동의에 기반한 성관계)로 여겨지며 성매수와 같은 성범죄 행위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용해왔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성착취의 해결은 더 이상 여성문제의 해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거의 전 영역에서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가 관철되고 있고, 또한 정치적 영역과 공적인 영역, 그리고 사적인 영역이 상호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러한 양자가 서로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즉 남성의 여성에 대한 성매수는 단순한 쾌락이나 본능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사회의 산물인 남성의 여성에 대한 권력관계를 재생산 하는 과정인 것이다.
불평등한 권력관계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듯이 여성의 비인간적인 삶이 존재하는 한 남성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의 인간다운 삶을 목표로 하기 위한 여성운동은 남녀 모두의 인간화를 지향하는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여성운동의 전략을 통해서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계급, 민족, 종교, 지역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1]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한국사회일상의 성정치학』, 교양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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