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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졸업생 배출 하나高 “3년 교육실험, 웃으며 마쳤습니다”

■ 독특한 운영방식으로 새 교육모델 제시… 15일 졸업식

“방법을 바꿔도 결과가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시작했습니다. 학생이 행복했다고 말하니 성공한 것 아닐까요.”

첫 졸업생을 15일 배출하는 서울 은평구 하나고 김진성 교장이 본보 기자에게 하는 얘기다. 방법을 바꾼다는 말은 공부만이 아니라 운동도 하고 악기도 연주하면서 즐겁게 배운다는 뜻이다. 대학 진학만을 목표로 국·영·수 수업과 문제풀이만 반복하는 고교 교육을 전인교육으로 바꾸겠다는 야심 찬 시도.

2010년 자율형사립고(이하 자율고)로 개교한 하나고의 1회 졸업생들이 눈에 띄는 진학성과를 내면서 ‘하나고 돌풍’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교장은 진학 실적에 주목하기보다는 즐겁게 가르쳐서 다양한 능력을 길러주겠다는 목표가 얼마나 이뤄졌는지를 봐달라고 부탁했다.


○ 고교는 대입 수단이 아니다!

하나고는 문을 열 때부터 의심 섞인 눈초리에 시달렸다. 하나고처럼 별도의 학생 선발권을 가진 자율고는 대개 성적이 높은 학생을 뽑아 명문대 진학률을 높이는 데 집중하는 사례가 많아서다. 하지만 하나고는 ‘지덕체’가 아니라 ‘체덕지’를 내세우며 전인교육을 실현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공부를 정말 덜 시킬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나고는 여느 고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1인 2기가 대표적이다. 모든 학생이 체육에서 한 종목을, 음악 또는 미술에서 하나를 배우도록 만든 제도. 학생들은 수업을 마치고 하루에 90분씩 체육 음악 미술 수업을 했다. 선택 가능한 예체능 과목은 피아노 첼로 해금 입체조형 사진 검도 필라테스 골프 등 40개가 넘는다.

교과과정이 비교적 자유로운 자율고의 특성을 살려 무계열·무학년 선택형 교과과정을 운영하기도 했다. 문과와 이과 구분 없이 학생이 배우고 싶은 과목을 골라 배운다. 고급수학 심화화학 같은 과목은 10명 안팎의 ‘미니 수업’으로 깊이 있는 토론식 학습이 가능했다.

또 기숙사 생활이 의무적이어서 학생들은 함께 지내며 사회성을 키웠다. 대부분의 학생이 서울에 살지만 학년별로 200명 모두 4인 1실의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사교육을 받기가 아예 힘든 상황이다.

학교 측은 이런 프로그램이 즐겁게 공부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자평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온 3학년 2학기에도 50명이 넘는 학생들이 1인 2기를 계속했다.

졸업생 김승애 양(19)은 “3년 동안 요가와 플루트를 배웠지만 공부할 시간을 버린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며 “오히려 혼자 공부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 A외국어고를 다니다 2학년 초에 전학 온 은다인 양(19)은 “외고에서는 새벽까지 과외 받는 친구가 있었지만 입시에서 그런 친구들이 모두 성공하지는 않았다”며 “다양한 내용을 배우고 친구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어 좋았다”고 돌아봤다.


○ 치열한 내신 경쟁은 과제

하나고의 실험이 성공하는 데 가장 필요한 요소는 역시 우수한 교사진이었다. 재직 중인 교사 67명의 평균 연령은 35세가량이다. 70% 이상이 석사 또는 박사 학위 보유자다. 특수목적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옮겨온 경우도 많다.

경기 고양시 고양외고에서 8년 동안 가르치다 2년 전에 부임한 김학수 교사(39)는 “사교육 없이 공부하고 개성과 특기를 길러주는 점이 다른 학교와 가장 다르다”며 “젊고 열정 있는 교사가 많아서 교육실험이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대입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려 노력했지만 첫 졸업생들의 실적을 전혀 무시하지는 않았다. 많은 학생이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하면 3년간의 교육실험이 통째로 평가 절하되는 엄연한 현실 때문이다.

부담감은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개교 초기에는 일부 학생이 성적을 높이려고 주차장에서 ‘방문 과외’를 받을 정도였다. 또 2010학년도와 2011학년도 신입생 중에서 각각 10명 이상이 전학을 선택했다. 전체 성적이 전교 1등이라도 학생 수가 적은 ‘미니 과목’에서 점수가 조금 밀리면 2.5등급으로 처질 정도로 경쟁이 치열해서다.

이런 분위기 덕분에 하나고는 올해 졸업생 절반이 최상위권 명문대에 진학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KAIST 포스텍 합격생만 129명(중복 포함)에 이른다.

이치우 비상에듀 입시전략연구실장은 “1인 2기를 비롯해 학교에서 마련한 교육과정이 최근 확대된 수시모집에서 요구하는 부분과 잘 맞아떨어지면서 결과적으로 진학에서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하나고는 지금과 같은 교육방향을 더 탄탄히 다질 계획이다. 김 교장은 “전에는 공부를 더 시켜야 하지 않느냐는 학부모들의 의견이 적지 않았지만 점점 우리의 교육 방향을 인정하는 분위기”라며 “학생이 더 즐겁게 공부하도록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