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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자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소

<주 : 이 글은 (사)김상진기념사업회가 발행하고 있는 계간지 『선구자 123호에도 함께 실립니다.>

 

바로코리아(오정삼)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2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인천항과 제주항을 오가는 여객선 세월호에서 “살려주세요!”라는 첫 신고전화가 전남소방본부 119상황실에 도착했다.
이후 오전 9시 30분 도착한 해경에 의해서 기울어져가는 세월호 안에서 제일 먼저 구출된 사람은 이준석 선장이었다.
모든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을 내린 채.

 

이후 국민들은 2016년 촛불시민혁명을 거쳐 박근혜 정권을 탄핵하고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외치며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사자후를 토하며 ‘소외된 국민들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의 이와 같은 진정어린 약속을 듣기만 하여도 국민들은 행복했고, ‘이게 바로 시민혁명의 힘이구나.’라며 가슴 뿌듯해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서민들의 집값안정과 전/월세 임대료 상승을 억제시키기 위한 2017년 ‘10.24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서 임대사업자에게 임대주택 전환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했으나 8개월만에 인센티브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임대사업자들은 “줬다 뺏겼다.”며 강력하게 반발했고 문재인 정부의 정책 일관성과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출발점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후 문재인 정부는 총 24번의 주택정책을 발표했으나 그때마다 주택시장은 정반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오히려 주택시장은 이 규제일변도의 주택정책을 가격상승의 시그널로 파악했다. 즉 정부의 고강도 규제책을 통한 대출억제와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과세는 소위 강남의 ‘똘똘한 한 채’로 수요가 몰리는 규제의 역설을 낳았다. 실제로 2018년 이후 서초구의 일반분양 가격은 평당 1억원이 넘는 가격으로 거래될 정도이고, 반포주공 1단지에서는 재건축 입주권이 평당 1억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여기에 강남이 오르니까 소위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 ‘노도강(노원, 도봉, 강북)’ 등 강북 지역의 아파트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결국 정부의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 지정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증하는 투자 유망지의 보증서인 셈이 되었다. 그리고 풍선효과까지 가세하여 지방의 아파트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아니 좀더 엄밀히 말하면 이미 지방의 아파트 가격이 오를 만큼 오르자 아파트 가격상승이 다시 서울의 강남지역으로 유턴할 모양새인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와 같은 전국적인 집값 급등세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고 “지금까지 시행한 대책들이 일정 수준의 성과를 내고 있다”고 판단하며 투기세력만 잡으면 집값이 안정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문재인 정부의 24차례의 주택정책이 모두 처참한 성적표를 낳고 있는지는 모른 채 말이다.

 

뒤돌아보면 지난 한해는 그 어느 때보다 부동산과 관련된 신조어가 많이 만들어진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신과 저금리로 풍부해진 유동성의 확대가 맞물리면서 ‘영끌’, ‘패닉 바잉’, ‘벼락 거지’, ‘이생집망’ 등의 신조어가 그것이다. 오죽하면 평범한 직장인인 2~30대가 영혼까지 끌어모아 공포에 떨며 아파트를 사려고 발버둥을 치겠는가. 그나마 영혼까지 끌어모을 수 있었던 청년들은 다행이라며, 그래도 ‘나는 막차를 탔다’며 안도하고 있는 사이에, 갑작스런 부동산 가격 상승에 ‘주거사다리’를 올라타지 못해 상대적으로 거지가 된 듯한 박탈감과 절망감은 ‘이번 생애에선 집사는 건 망했다’며 우울한 소주를 들이키고 있을 젊은 부부들을 생각해보라.

 

결국 문재인 정부의 정권 원년부터 뚝심 있게 장관직을 수행하던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그동안 부동산 정책의 책임을 안고 ‘빵투아네트’라는 훈장(?)을 받은 채 물러나게 되었고, 변창흠 국토부 장관이 현정부의 정권 임기 후반부 부동산 정책을 마무리 하게 되었다. 신임 변창흠 국토부장관은 문재인 정부에서 현재의 부동산 정책을 설계하는 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SH사장을 거쳐 2019년부터 LH사장으로 취임하여 정부의 주택공급 정책을 지휘해왔기 때문에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이해도가 높은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에 현정부가 보여준 주택정책에서의 잃어버린 시장의 신뢰는 그동안의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의 부작용을 나머지 임기동안에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의문이 들게 한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게 낳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불신(不信)의 불신(不信)을 통해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