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 이 글은 (사)김상진기념사업회가 발행하고 있는 계간지 『선구자』 128호에도 함께 실립니다.>
이젠 견제구를 날릴 때
바로코리아(오정삼)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0.7%의 근소한 표차로 집권 여당이 졌다. 집권당의 최종 득표율은 47.83%이니 “고거 쌤통이다!!” 할만한 국민들이 50%가 넘은 듯. 그나마 다행인 것은 표차이가 34만 표를 조금 웃도는 정도이니 윤석열 당선인도 교만할 수는 없을테다.
프로야구가 개막됐다. 뭐니뭐니 해도 올해도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선수는 2021년 시즌 타격왕을 달성했던, 소위 ‘바람의 손자’라 불리는 프로 6년차 이정후 선수다. 야구는 원래 투수놀음이라고 할 정도로 투수의 역할이 크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투수에 관심이 집중되는데, 이정후 선수의 경우는 예외다. 실력있지, 매너좋지, 잘생겼지 등등. 그래도 이런 슈퍼스타를 견제할 수 있는 선수는 투수다. 마치 이제 대통령 당선인으로써 국민들의 관심을 온몸으로 받기 시작한 윤석열을 견제할 수 있는 존재가 국민들인 것처럼.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지방선거가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의 결과에 따라 지방선거에 대한 예측도 좌우되고 있다. 과거 현 집권여당이 우세를 보이던 수도권에서의 정서도 많이 변했다. 특히 서울에서는 심각할 정도다. 지난 제7회 전국동시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의 25개 자치구 가운데에서 24개 자치구를 거의 싹쓸이 했던 민주당의 꿈같은 시절은 가고,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의 서울시의 자치구별 득표율은 민주당이 11개구, 국민의 힘이 14개구로 역전되고 말았다.
“이게 뭔일이고!!”
어떤 이들은 보수 거대언론의 공작의 결과라지만, 언제 보수 거대언론의 공작이 지금과 같지 않은 적이 있었단 말인가. 오히려 이제는 다양하고, 직접적인 개인참여 매체의 발달로 진보진영의 언론도 의도적인 사실 왜곡에 가담할 정도가 되었으니 그 정도는 변명거리도 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사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시의 구청장 25곳을 한나라당이 싹쓸이 한 적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개인적으로 최근 가치관의 혼란이 많았다. 나이 60도 넘은 사람이 아직도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다니. 끌끌끌~~(참 한심하다, 한심해.)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을 응징했던 촛불혁명에 참여할 때만 해도 나는 진실은 반드시 이긴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가족, 동료들과 촛불시위에 참여하여 광장에 나아가 외칠 때만 하더라도 나를 가장 울컥하게 만드는 외침은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윤민석의 노랫말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사회는 오로지 승리를 위해 보수든 진보든 자신의 진영논리에 따라 일부러 사실을 왜곡하고, 감추고, 거짓을 일삼는 모습이 대중들의 눈에도 띄기 시작했다. 정치가들이나 그들의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논객들이나 인플루언서들은 오직 자기편의 지지세력을 두텁게 하고, 그들의 환호성을 높여나가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워 한다. 어차피 반대편도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이럴 때 가장 유효한 것은 무책임한 음모론과 거짓뉴스의 끊임없는 재생산이다. 그래서 나는 의심하기 시작한다.(Cogito ergo sum : 나는 懷疑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들은 거짓을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아마 사람들이 모두다 ‘똑똑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임에 틀림없는 듯하다.
그래 인생이 뭐 그런거이지. 교과서는 말 그대로 가르침을 위한 책일 뿐이지. 세상이 가르침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잖아. 사실 나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지지층을 묶어 세우기 위해서 각 정당이 마구 남발하다시피 한 특보가 되어 소위 ‘교육대전환위원회’에서 활동했지만, 신명이 나지 않았다. 내가 지지하고 있는 후보자 역시 거짓투성이의 삶의 흔적들을 보이고있는데, 우리 아이들의 행복한 삶과 즐거운 교육을 위해서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목청껏 높이기에 부끄러운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상대방 후보도 이에 못지않았기에 후보의 정책과 실천능력에 가산점을 부여하면서 마뜩잖은 지지 의사를 보일 뿐이었다.
돌이켜보면 이런저런 결점과 오류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노무현, 노회찬, 박원순, 그들이 있어서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이 우리 곁에 있었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고 굳게 믿을 수 있었던 시절이니까.
그래서 오늘 나는 더욱 그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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