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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자

우리, 함께 간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때

<주 : 이 글은 (사)김상진기념사업회가 발행하고 있는 계간지 『선구자 119호에 실린 필자의 글(2020.1.11,)을 전재(全載)한 것입니다.>

바로코리아(오정삼)

 

 

혼란스럽다.

좌우가 나뉜 것이 아니라 진보가 나뉘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거였어?”라는 자조적 질문이 여전히 머리 속을 맴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투쟁 속에 동지 모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동지의 손 맞잡고

 

  나의 청년시절 동지들과 힘차게 함께 부르던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굳게 맞잡은 동지의 손길에서 혁명을 향한 서로의 믿음을 느꼈었다. 그래서 더욱 우리는 운동에 대해서 큰 자부심을 가졌었다. 그리고 마침내 얼마 전 우리는 세월호 추모곡으로 윤민석씨가 작사/작곡한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함께 입맞추어 부르며 촛불혁명을 즐겼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진보나 보수나 똑같더라.

평생을 진보로 살았는데

너무나 슬퍼지는 마음에

오늘도 촛불을 못나갔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때로 진실보다 더 확장된 승리라는 가치에 당파성을 덧칠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억누르기 힘든 답답함으로 책장에서 이미 누우런 고서가 되어버린 조정래 작가의 장편대하 소설 태백산맥을 다시 꺼내들었다. 평소에 아내랑 둘이 마을 뒷산 격인 북한산을 오르면서 길눈이 어두운 내가 아내에게 자주 듣는 말, “형은 예전에 빨치산 했으면 선 떨어져서 굶거나 얼어 죽었을 거야.”을 흐뭇한 마음으로 떠올리면서, 그리고 봄에 진달래 능선을 오를 때면 예전에 빨치산들은 진달래꽃 보면 모진 겨울 이겨낸 기쁨에 이제 살았구나라고 했었어.”라는 즐거운 장면을 찾아서 우리 부부의 신혼여행지이기도 했던 지리산을 되새겨보았다.

 

  노고단으로 올라 임걸령을 지나고, 날라리봉과 토끼봉을 넘어 연하천이 있는 명선봉에 이르는 주능선은 한나절이 조금 넘는 발길이었다. 빗점골은 명선봉과 형제봉의 양쪽 골짜기가 삼각형으로 만나는 가운데 지점에 있었다. 빗점골에서 계곡물을 타고내려가면 지리산 속에서는 제일 규모가 큰 마을인 의신이 나왔고, 그 물줄기는 대성골을 흘러내린 물줄기와 대성교에서 하나가 되었다. 그러니까 빗점골은 천왕봉과 노고단 사이의 중간지점이면서, 지리산에 가장 높고 깊은 골짜기들 중의 하나였다.

  사월이 끝나가고 있는 지리산의 날씨는 그지없이 포근하고 따스했다. 하늘은 한량없이 맑고 깨끗했으며, 푸른 잎들이 돋아오르는 속에서 진달래꽃들이 철쭉에 앞서 이제 막 꽃잎들을 피워내고 있었다.

태백산맥10, 조정래, p.220, 한길사, 1989

 

  “, 배 동무 발언이 탱자까시맹키로 나 가심얼 찔르요. 나도 새끼가 둘 딸린 몸잉께라. 근디, 나넌 새끼덜이야 다 즈그 묵을 것 타고난다는 옛말얼 믿고 잡으요. 그 말얼 믿고 맘 편허게 죽을 작정이오. 나가 지끔꺼정 시물여섯 해럴 살었는디, 그 중에서 입산투쟁 험시로 산 삼 년이 질로 존 시상이었소. 니나 나나 다 차등웂이 동무로 살고, 묵어도 항꾼에 묵고 굶어도 항꾼에 굶음서 공평허니 살고, 웬수덜헌테 총 쏨스로 배짱으로 살었을께 요보담 더 재미지고 존 시상얼 워디 가서 또 살아보것소. 한가지 한이 있다먼, 요런 시상얼 살아서 못 맹글고 가는 것이제라.”

앞의 책, p.260

 

그랬다. 그들은 얼어죽고, 굶어죽고, 토벌대의 총에 맞아죽으면서도 함께하기에 행복했다.

 

  그런데 지금 진보가 싸우고 있다. 그것도 현장에서가 아니라 조선 시대의 士林도 아닌데 책상물림에서 말이다. 누구는 보다 선명함을 강조하고, 누구는 전술적 선택을 얘기하기도 한다. 가뜩이나 SNS라는 쟁명(爭鳴)의 공간이 분명하게 나뉘어지면서 아예 상대방 말은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 무엇보다도 참됨이라는 가치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진보 진영 내부에서조차도 집단적 이지메와 다구리가 자행되고 있다.

 

  다행인 것은 현장은 이들의 다툼에 전혀 관심이 없다. 주민들과 함께 하는 풀뿌리 운동은 다 함께 가기 위해서 편가르기를 하지 않는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때로는 느리고, 정확하지 않고, 나랑 생각이 달라도 기다려주고, 조정하고, 숙의하면서 함께 가기 위해서 만절필동(萬折必東)을 되새기며 느리고 지친 걸음을 내디디며 한발자국씩 돌아돌아 나아간다. 그래서 현장에서 잘 단련된 활동가들은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내심을 가지고 귀 기울여 들어줄 줄 안다. 왜냐하면 골방에 있는 열 명보다도 인민 속에 있는 한 명이 더 낫다.’고 믿기 때문이다.

 

태백산맥을 다시 꺼내보면서 10권의 맨 마지막 장에 이 책을 수 차례 읽었던 아내가 써놓은 글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