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 이 글은 (사)김상진기념사업회가 발행하고 있는 계간지 『선구자』 120호에 실린 필자의 글(2020.4.11,)을 전재(全載)한 것입니다.>
바로코리아(오정삼)
새벽 5시 50분, 마스크를 쓰고 걸어서 2분도 채 걸리지 않는 사전투표장으로 가기위해서 집을 나선다.
‘6시부터 투푠데 너무 일찍 가는거 아냐?’
자만도 잠시, 투표장에는 이미 긴 줄이 들어서 있다. “엥?? 부지런한 사람들 많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줄을 따라 투표장에 들어서니 손소독제와 일회용 비닐장갑을 나눠준다. ‘지구’ 행성을 파괴하고 있는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에 대한 ‘행성(the Planet : Earth)’의 복수, 코로나19 팬데믹!!
그러나 이들 호모사피엔스들은 오늘은 호모폴리투스(Homo Politus)가 되어 ‘행성’의 복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치를 한다, ‘숨쉬는 것도 정치!!’라고 외치며...
그림1. 스페인 정복 당시 아즈텍과 잉카제국
1492년 콜롬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 호모임페라토(Homo Imperato)들의 세계지도에는 소위 ‘신대륙’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스페인의 카리브제도 식민화를 시작으로 원주민들을 착취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들 침략자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대륙의 어딘가에 매우 강성한 제국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대륙으로 전진하여 마침내 1519년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에 의해서 아즈텍문명을 점령하고, 더 나아가 1532년에 이르러서는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zaro)에 의해서 잉카제국마저 점령하고 가학적인 노동과, 침략자들이 가지고 들어온 전염병으로 채 20년도 안돼 제국과 문명은 멸망한다.
‘행성’의 복수, 팬데믹!!!
그림2. <아테네 역병>, 니콜라 푸생 作, 1630
네덜란드의 탐험가인 야코프 로헤벤이 1722년 부활절에 상륙한 데서 이스터(Easter)섬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라파누이섬은 노예사냥과 천연두 등의 유행으로 섬의 인구가 100 여 명대로 감소되었다.
‘행성’의 복수, 팬데믹!!!
그런가 하면 현존하는 기록에 남아 있는 인류 최초의 팬데믹, ‘아테네 역병’은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이던 기원전 430년경 아테네 인구의 1/4을 앗아가며 3년 여간 그리스 전체를 휩쓸어, 찬란했던 그리스 문명을 쇠락의 길로 몰아갔다.
‘행성’의 복수, 팬데믹!!!
애초에 자연의 일부였던 호모에렉투스(Homo Erectus)가 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생산력의 발전과 함께 정착 생활을 시작했다. 이제 호모파베르(Homo Faber :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는 여럿이 한곳에 모여 집단생활을 하면서 씨족간의 접촉이 늘어나고 병을 옮기기도 쉬워졌다. 또한 그들이 기르는 동물들은 가축이 되어 많은 질병을 옮기기 시작했다. 즉, 기원후 165년~180년 사이에 로마제국에 대유행을 일으켰으며 『명상록』의 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포함해 500만명 이상이 사망한 천연두(smallpox)는 소에게서 인간에게 옮겨온 것이고, 홍역은 개에게서, 독감은 돼지와 닭, 그리고 나병은 물소에게서 옮겨온 것이다. 심지어 2003년 확산되었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는 박쥐에서 사향고양이로, 2015년 대유행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은 박쥐에서 낙타로, 그리고 현재 대유행하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도 박쥐로부터 옮겨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그 과정에서 인류는 매시기 중대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 풍요로운 생활을 위한 식량의 생산을 위해서 자연을 파괴할 것인가, 아니면 자연과 공존할 것인가. 이 문제에 있어서 인간은 전자를 택했고,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행성’은 본격적으로 인간을 복수하기 시작했다.
팬데믹을 통한 인간 개체수의 조절!!!
‘행성’의 준엄한 복수 앞에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안다. 이제 전염병은 늘 우리들과 함께 있을 것이고, 이미 수백 종의 전염병들이 인간과 자연 사이의 허물어진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과거 백년에 한 번씩 있었던 ‘행성’의 복수는 일상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인간을 전쟁이라는 치명률 높은 수단을 활용하여 개체 수를 조절하던 ‘행성’은 이기적인 인간들이 효율성 높은 신무기들을 개발하여 자신의 개체 수를 손실하지 않고 전쟁에 승리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라는 유행어를 사용하면서도 ‘행성’의 계획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아니 ‘행성’의 이러한 계획을 깨달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멈출 수 없다. ‘행성’의 준엄한 복수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야 하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말자!!’를 해야만 하는 아이러니.
이미 너무 늦은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기회는 있는 것인지...
‘남극의 눈물’을 바라보고,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북극곰을 바라보면서도 오늘의 호모폴리투스(Homo Politus)들은 여전히 자신의 가까운 장래를 깨닫지 못하고 대가리가 깨지게 싸우고 있다.
미국드라마 『워킹데드(the Working Dead)』와 2011년 개봉작 『컨테이젼(Contagion)』이 다시 보고싶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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